녀석의 초롱초롱하고도 뭔가 일을 치를 듯한 눈망울을 보는 순간 예감했다. 무슨 일이 되었든, 일을 내고 말 거라는 것을.
토요명화와 일요시네마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줄무늬 죄수복의 두 사내가 탈옥을 꿈꾸며 몇 번이고 시도하다 좌절하는 이야기. 나비 문신 때문에 빠삐용(Papillon)으로 불렸던 남자는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스티브 맥퀸이 절벽에서 뛰어내린 그 장면은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의 뜨거운 의지를 대변하는 영화사의 한 장면이었다.
추석이라 네 시간에서 여덟 시간으로 늘어난 힘든 버스 여행에 지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보았다. 짠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 졸리고 기운 없는 아이 목소리에 손을 꼭 잡았다.
“응, 아빠가 ‘다있어’에서 리빙박스 사 왔어.”
“라슈 한번 옮겨봐.”
지난번 서울에서 잠시 만났던 똘망똘망한 눈의 햄스터 라슈는 장거리 여행에 지쳤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넓고 얕은 리빙박스가 불편해 보여 ‘다있어’에서 조금 깊고 작은 생활 상자를 다시 사 왔다. 톱밥을 깔고 작은 집과 접시 두 개에 물과 먹이를 넣어주었더니 생기를 보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귀여운 녀석. 온 식구들이 라슈 앞에 모여 앉았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보며 같이 웃는 순간, 이 작은 녀석의 몸짓 하나에도 큰 즐거움에 웃는데 반려동물 하나 키워야 하나 생각하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켜보다 문득, 근육질의 요녀석이 탈출하면 어쩌지 하는 염려에 아까 사 온 넓고 얕은 박스에 라슈란 녀석이 담긴 리빙박스를 넣었다. 딱 좋았다. 마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에 해자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뚜껑을 닫으면 숨 막힐까 봐 ‘다있어’에서 사 온 구멍 숭숭 뚫린 천을 위에 덮고 테이프로 칭칭 감고서야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여섯 시 알람 울리기 바로 전에 눈이 떠졌다. 거실 한편에 두었던 햄스터 집으로 가보았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녀석이 해자에서 플라스틱 벽을 갉고 있었다. 임시 가옥을 덮고 있던 천 한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밤새 발돋움해서 닿은 천 조각을 갉아댔나 보다. 넓은 해자 같은 상자는 미끄러워서 타고 올라 올 수 없었다.
“저 녀석들은 탈출만 생각해요.”
아이 말에 한참 동안 웃었다. 톱밥을 들어내 높이를 낮춰주고 덮고 있던 천은 다시 튼튼하게 싸맸다. 밤새 애쓴 녀석의 노력은 칭찬할 만했지만 라슈가 온 집을 헤집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아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힘들었든지 버스 타자마자 곯아떨어졌어요.”
혼돈의 3박 4일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햄스터 라슈.
나도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대탈주를 감행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십 분이면 닿는 파란 바다,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푸른 산꼭대기 그곳으로. 물론 그 정도로는 탈주라고 하기에 부족하겠지만.
망망대해를 향해 몸을 던졌던 빠삐용의 실제 모델은 베네수엘라에서 일 년 수감된 후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어린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내가 지금 파란 바다, 푸른 산으로 가본들 빠삐용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나른한 점심, 쌉쌀한 커피 한잔 마시고 사무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라슈는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