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걸어도
아프지 않을 신발이 있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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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보낸 신발을 신고 강변을 걸었다. 가까운 통영의 '걷기 좋은 길’을 한동안 헤매고 다녔더니 그걸 기억했다가 가볍고 편안해서 걷기 좋다며 생일날 건네준 것이다. 아내가 ‘아끼면 똥 된다.’며 신발장에 고이 모셔 두었던 큰아이의 선물을 현관에 꺼내놓았다. 흙 묻는 것이 아까워 두었었는데….


정말 편했다. 후덥지근하고 습기 가득한 날씨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을 보고 나선 길.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물 위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깡충깡충 튀어 올랐다. 근엄한 자세로 양반걸음 걷던 회색 왜가리가 멈춰 그놈들을 노려보는 침 넘어가는 순간, 하얀 쇠백로 몇은 자기들끼리 까불고 노느라 물고기 뛰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더운 여름 풍경에 발걸음 사뿐사뿐 옮기며 걷는데 신발 안에 티끌 같은 것이 발가락을 문지르는 게 느껴졌다. 멈춰 서서 신발을 보았다. ‘돌이 들어갔나?’


이십 년도 지난 기억이 신발 위로 피어올랐다. 2월 말 대구 군의학교에서 일주일간 신체검사를 받고 제3사관학교로 이동했다. 12주 과정의 초급장교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3월 초 영천은 무척 추웠다. 3월부터 하절기라 난방도 끊겼고 출입문 바로 옆 이층 침대 위 칸은 유난히도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국방색 담요 위에 쑥찜팩을 깔고 잠들어도 일어나면 코끝엔 냉기가 가득했다. 몇은 동상으로 의무실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3월 초 추운 날씨, 코가 시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격훈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십 초반을 지나 삼십 대를 눈앞에 둔 늘어진 육신으로 40km를 걸어야 했다. 그것도 20kg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서 100리를 걸어가는 것, ‘그래, 삼십 대가 아닌 게 어디야’ 위안 삼아 생각해 봐도 맥락에 맞지 않는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노랫말만 맴돌았다.


국방부 시계는 고장도 나지 않고 흘러갔다. 눈 떠보니 유격훈련 출발하는 날. 연병장에 어기적거리며 나갔더니 아프다고 손든 후보생 빼고는 전부 나와 있었다. 부대장의 훈시가 끝나고 제일 앞 내무반부터 출발했다. 무거운 걸음은 멋진 군악대의 행진곡에 떠밀려 나갔다.

이십몇 킬로쯤 걸었을까? 왼쪽 넷째 발가락 위에 머들머들한 느낌이 전해졌다. 작은 돌이 들어갔나 했지만 참고 걸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 여섯 시 무렵 도착한 화산 유격장. 내무반에 앉아 전투화 끈을 풀고 무겁고 아픈 발을 구출해 냈다. 넷째 발가락 위 피딱지와 같이 눌어붙은 양말을 벗는 내내 입을 꽉 다물어야만 했다. 작은 돌이 아니었다. 전투화의 각진 부위와 내 넓적한 발 모양 사이에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발가락 위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작은 돌이 들어간 것과 살점이 쓸려 떨어져 나간 것 하나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대가를 유격받는 내내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몇 해 전 연예인이 군대 체험하는 TV 프로그램에 그 유격장이 비쳤다. 아팠던 발가락과 훈련 내내 힘들었던 기억도 올라왔다. 하지만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일주일 뒤 유격훈련 마치고 부대로 돌아올 때 근사한 제복에 줄 맞춰 선 군악대의 힘찬 팡파르 연주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가만히 서서 신발을 벗어 들었다. 가볍게 흔들었다. 새끼손톱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작은 돌가루가 튀어나왔다.

너였구나! 하마터면 너 때문에 이 귀한 신발 탓할 뻔했구나!

신발을 털고 다시 신었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돌멩이인지 발이 까졌는지도 모르고 걷다 아픈 생채기만 내었든 파릇했든, 그 시절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내 곁에는 암만 걸어도 아프지 않을 편안한 신발, 그리고 신발 안의 이물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세월의 묘약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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