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선생님, 올해는 시월 말이 아니라 10월 16일입니다.”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으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다시 물었다.
“사장님, 올해는 왜 그리 빨리 닫기로 하셨는지요?”
“몸도 좋지 않고…”
예전 지역 신문에서 사장님의 아팠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 더 물을 수 없었다. 아쉬움 가득 묻혀 올라온 냉면 면발을 쳐다보고 꼭꼭 씹어 삼켰다.
오늘이 그날이다. 가속페달을 꾹 밟았다. 가을부터 거세지는 바닷바람에 난방이 되지 않는 오래된 일본식 가옥은 나이 들어가는 집주인이나 다다미에 앉은 손님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시월 말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해 삼월에야 다시 연다. 그때까지는 냉면을 먹을 수 없다.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에 다른 냉면집을 찾아봐도 그 냉면에 길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You risk tears if you let yourself be tamed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 흘릴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냉면 면발 하나에 눈물까지 흘리겠냐마는, 지난주 내내 그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아쉬움이 쌓여갔다. 언제 먹으러 가야 하나?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 새벽에 잠이 깨면 그 집 냉면 맛이 생각났다. 서울 살던 시절에 맛본 오장동 냉면은 이미 마음을 벗어난 지 오래. 나에게는 오로지 그 집 냉면만이 냉면이 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백일도 더 지나야 그 냉면을 맛볼 수 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여섯 시까지 할 때도, 일곱 시까지 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몇 시에 문 닫을지 알 수 없으니. 오늘을 놓치면 넉 달을 기다려야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아니 그런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전화를 걸었다. ‘뚜-뚜-’ 짧은 신호 뒤에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사장님. 용과입니다. 오늘 몇 시에 문 닫으시는지요?”
"여섯 시 문 닫습니다만,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세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대답이 돌아왔다. 서둘러 병원을 나섰다. 가는 길에 과일가게에 들러 단감 한 상자를 실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십여 분 달려 도착한 그 집 앞. 늘 환하게 켜져 있던 간판 불빛이 어둡게 꺼져 있었다. 덜컹하는 마음으로 가게 입구를 봤더니 문 앞에서 내외분이 밝게 웃고 서 계셨다. 서둘러 단감 상자를 내려놓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단 말과 함께 인사드렸다.
“괜찮아요, 어서 와요.”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사모님께 꾸벅 인사하고 일 층 방에 앉았다. 계피향 섞인 뜨끈한 육수를 한 모금 삼키니 허기가 밀려왔다. 배배 꼬고 앉은 짙은 회갈색 면 다발 위에 삭힌 가오리 몇 점, 편육 하나, 삶은 달걀 반 개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오늘은 달걀이 다 떨어져 반 개만 올렸어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젓가락 가득 면발을 감아올려 한입에 가져갔다. 오독오독 씹히는 가오리 회무침과 쫄깃하고도 알싸한 면발 가닥이 입안 점막 가득 찼다. 아껴서 꼭꼭 씹고, 삼키고, 뜨끈한 육수 마시고. 올해 마지막 냉면 한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쯤에야 정신이 들었다.
‘이런, 너무 빨리 먹었군.’
한 그릇 더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은 면발 몇 가닥과 가오리 회무침 한 점, 빨간 양념 담긴 그릇에 차가운 육수를 부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한 젓가락 집어 들고서 후루룩 씹고 마시고 했더니, 끝이다. 올해 마지막 냉면이다. 입안 가득하다 스르르 사라진 냉면 면발… 또르르, 오른쪽 눈가에 물기가 흘렀다.
“올 한해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건강히 지내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오리 회무침과 육수를 한가득 담아 주셨다. 칠순이 얼마 남지 않은 멋진 냉면집 주인께 인사하고 돌아섰다. 불 꺼진 간판이 눈에 가득 찼다. 잊히지 않는 그 무엇이 되고 싶단 생각, 누군가가 돌아볼 수 있는 그리운 무엇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훅 사라졌다. 흔적을 남겨 어디에 쓰려고.
삼월이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