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인터넷에서 동영상 하나를 찾았다. 중후한 테너가 부르는 애잔하고도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가곡 한 소절에 반해 버렸다. 3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던 무렵 집 앞 음악학원에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받아든 악보가 그 노래였다. 반복해서 부르고 또 따라 부르다 문득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졌다. 기사 몇 편을 읽어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찬사를 받던 그는 삼십 중반 절정의 자리에서 성악가로서 사망 선고를 받게 된다. 갑상선암 진단. 수술 후 한쪽 후두 신경의 손상으로 그는 목소리를 잃었다. 해부학적으로 갑상선 주변에 목소리와 관련된 중요한 신경이 두 개 지나가는데 그중 하나가 손상되어 기능을 잃은 것이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선언에 손뼉을 치고 말았다. 수술과 재활로 보낸 삼 년은 상상조차 힘든 억겁이었을 텐데. 그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무대에 선 그는 테너 배재철이다. 그의 이야기는 2014년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라는 제목으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어렵사리 구한 그의 CD. 재생 버튼을 눌렀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첫 소절이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종교인이던 그렇지 않던 모르는 이가 없는 이 노래를 얼마 전 성악선생님께 배웠다. 가사를 아는 곡이라서 더 반가웠지만, 절망의 나락에서 삶과 인간의 의지를 놓치지 않고 일어선 그가 내는 충만한 목소리기에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Amazing grace는 John Newton이 흑인 노예무역을 하던 자기 잘못을 회개하며 1772년에 쓴 가사라고 한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인 1830년경 인디언으로 불렸던 원주민 체로키족 마을에 금이 발견되자 미국 정부는 인디언 추방법을 만들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14,000여 명의 체로키족을 강제로 이주시키게 된다. 1,300km의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인구의 30% 정도인 사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렀다. 장례도 변변히 치르지 못한 체로키족은 죽어간 동족의 혼을 달래는 노래로 Amazing grace를 불렀다. 찬송가 이전 진혼곡으로, 살아남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들을 달랬던 그 노래.
문화란 연못에 던진 돌멩이 같은 것이라 했다. 연못 가운데 떨어진 작은 돌은 금방 가라앉지만, 그 흔적은 파문을 만들어낸다. 흔적과 파문이 모여 아름다운 대칭의 동심원으로 퍼져나간다. 돌멩이 흔적도 모르는 변경에도 파문이 닿고 동심원이 도달해 작은 돌이 일으킨 세례를 받는다. 성공회 신부가 되어 노랫말을 붙인 John Newton은 그날 자신이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가 흘린 눈물은 그도 모르는 새 체로키족의 마음에 뿌려졌다. 고난과 아픔에 몸부림치던 많은 삶에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절정에서 쓰러진 한 성악가의 지팡이가 되었다.
공간 가득 채운 가슴 벅찬 노래를 따라 불렀다. ‘Was blind, but now I see.’ 나는 그렇게 250년 전 그가 흘린 눈물을 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As7MPXSK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