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수련 기간으로만 따지면 삼십 년이지만 이제 겨우 2단. 아니 2단으로 십 년 이상 살고 있으니 참 게으르고 굼뜬 인간이다. 무거워진 몸, 올록볼록하게 나온 배. 더는 견딜 수 없어 도장을 방문했다. 칠 년이나 지났지만, 검도관 관장님은 도복이며 장비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보관해 놓고 있었다. 이제는 방문할 일이 없어진 관장님 아이들이 몇 년 동안 내게 치료받은 이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묵은 때 묻은 도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주름 잡아드릴까요?”
도장 바로 앞 세탁소라 그랬을까. 생각지도 않았던 말씀을 하셨다.
“네? 네.”
며칠 뒤 칼주름 잡혀 반듯해진 도복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오랜만에 도장에 앉았다. 묵상, 기본동작, 보호구 쓰고 공격 연습 및 실전 연습으로 진행되었다. 칠 년 동안 뱃살만 는 게 아니라 폐 속에 자리 잡은 케케묵은 세월의 찌꺼기들로 숨쉬기 힘들었다. 깨닫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나를 중학생 아이는 날렵한 공격으로 손목, 머리, 머리를 쳤다. 많이 맞았다. 땀도 흠뻑 흘렸다. 살아 움직이는 근육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호흡도 편안해지고 재빠른 공격에도 버티는 시간이 길어졌다. 젊은 사범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성인부는 저녁 여덟 시지만 가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수련하는 시간에도 간다. 젊은 사범이 일대일로 칼을 맞추며 자세와 칼 쓰는 법을 봐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한 달 뒤로 다가온 시장기 검도 대회를 준비하는 어린 친구들의 활기찬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한 시간 남짓 땀 흘리고 나서 정리하는 시간. 사범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오늘 훈련 총평을 했다.
“실전처럼 연습을 잘 해줬다. 한가지 당부할 것은…”
많은 칼을 맞으면서 성장하고, 때론 울기도 했을 나보다 스무 해 이상은 젊은 사범. 그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면서. 매주 있는 생화학 시험 때문에 일요일마다 밤을 새우면서. 누군가 잡아주어야만 살 수 있는 애끓는 생명과 숱한 밤을 보내면서. 내 삶의 방향을 찾고자 의미 없이 어지러운 발걸음을 남기면서. 그렇게 보낸 날을 뒤돌아보았다. 쉽게 살아오지도 어렵게 살아오지도 않았지만 절제되지 못한 욕망과 통제되지 않는 욕심으로 아직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삶.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사랑’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삶은 그런 것이라고 했다. 쉽게 보고 덤빈 일들, 인간관계에서 마주친 쓰라린 경험들, 생각대로 될 것으로 예측하여 벌인 일, 살면서 뜻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었나?
“… 쉬워 보이는 상대라고 마구 들어가서 때리고 그러면 안 돼.”
“어려운 상대를 만날수록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으려고 노력한 다음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단련해야 실력이 느는 거야, 알겠죠?”
의젓하게 앉아 씩씩하게 대답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사범과 어린 검도관 동문들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길, 도장 벽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 나의 정신, 육체 그리고 내가 쓰는 칼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져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젊은 사범의 당부와 도장 벽의 글귀를 마음에 담았다. 도장을 나와 시원한 밤바람을 맞았다. 사랑으로 오늘을 산다는 건 이런 순간으로 행복해진 마음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충분해진 하루에 콧노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