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이’라고 썼다 지우길 몇 번. 진부한 표현이라 해도 딱히 대체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로 꿈같은 2년이었다. 사이버대학이라고 설렁설렁 수업 듣고 적당히 과제만 내면 될 줄 알고 덤빈 그날. 수강 신청하느라 한 과목 한 과목 살펴보던 날들. 절정에 닿았던 들뜸에 등 떠밀려 꿈속에서 헤매다 이제야 인간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쭉 ‘이과계’만 다녔던 내가 왜 ‘문예 창작’에 끌렸을까? ‘예술로서의 문학’을 ‘미적 체험을 통해 예술작품을 구상하고 생산하는 활동’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 머리에 쥐 나는 일이 될 것이 뻔했을 텐데.
오랫동안 초록-서론-방법-결과-고찰의 순서로 된 글을 썼다. 치열한 삶의 공간에서 약간 빗겨나 있었을 때, 그 시간의 자투리에 앉아 짬짬이 글을 썼다. 그렇게 기록해둔 옛 기억과 일상의 짧은 생각을 정리하여 얇은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반강제로 참석한 여러 인사들께 맛있는 회를 대접해드리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출판 기념회였다. 그때 일이 재밌었노라 얘기하는 분을 만나면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잡스러운 글에 비싼 책값을 기꺼이 내고 귀한 말씀까지 보태주신 분들. 앞뒤 맞지 않는 어설픈 나의 글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얇은 그 책을 뒤집어엎고 싶었다.
그래 대학을 다녀보자. 몇 해 전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일 때문에 시험 보러 갈 수 없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 학교를 잘린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대학은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했다. 문예창작학과 3학년 편입. 마침 코로나 감염으로 전 세계가 공황 상태에 빠진 시기였다. 일주일에 여섯 번 있던 모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2년 동안 편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올라오는 여섯 과목의 수업 영상은 녹록지 않았다. 에세이, 시, 소설, 동화, 웹소설 등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 내야만 하는 과정. 수업이야 퇴근하고 책상에 앉아 내려오는 눈꺼풀에 힘만 주면 어찌 됐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제로 나온 5천 자 정도 되는 웹소설 한 회, 동화 80매, 시 몇 편 등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는 꼬박 2년 동안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에세이와 소설 합평을 하면서 글 쓰는 동료들을 만났다. 나의 글을 세밀히 보는 좋은 동료 덕분에 어려운 과정도 잘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졸업한다. 앞으로 혼자서 글을 써나가야 한다.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해이를 물리치고 행동하는 데에 게으르지 말며/ 힘차게 활동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초의 불경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이다. 경전의 귀한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삶의 주체가 되어 힘찬 발걸음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Ubermensch(위버멘쉬)를 얘기했다. 순종하며 고통을 참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삶, 사회의 규범과 속박을 벗어던진 사자의 단계를 지나 어린아이에 이르러서야 삶을 즐기고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위버멘쉬 -초인 또는 한계를 극복한 인간- 로 존재하게 된다고.
작은 과정의 마침표 하나 찍었다. 하지만 문예창작학과 졸업생이란 짐을 등에 짊어지고 사막을 건너야 하는 낙타가 되어 글쓰기의 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여정의 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걷다 보면 사자같이 날뛰고 있는 내가 있을 것이고 또 가다 보면 아이가 되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힘든 글쓰기 과정을 함께한 나의 동료들도 지척에서 같이 걷고 있을 것이기에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길일 것이다.
2년, 정말 꿈같이 지나갔다. 내년쯤 두터운 책 한 권 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