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책 좀 더 읽어야 해. 책만 읽으려면 눈도 침침하고 따분할 테니 중간 중간 MSG 맛 좀 보면서 읽어!’
두꺼운 책과 함께 온 커피 두 봉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인생의 역사』 책제목에서 느껴지는 포스에 압도되어 책장을 열었다. ‘아 참, 커피가 있었지.’ 초록 비닐봉지를 뜯고 컵에 드립백의 두 다리를 걸쳤다. 커피가 담긴 드립백 위에 따뜻한 물을 천천히 부었다. 봉지에 적힌 대로 몇 번에 나눠 물을 붓고 드립백을 버렸다. 컵을 들어 향을 맡고 입에 가져갔다.
연한 향. 맛이 느껴지지 않는 커피. ‘음… 대학 동기가 이럴 리가 없는데…’ 커피 맛에 실망하고 커피 물을 그대로 버렸다. 그리고 책만 몇 페이지 더 읽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출근한 아침. 책상 위를 보니 ‘샤넬’이란 이름의 그때 그 커피가 눈에 띄었다. ‘저놈은 뭔가 다르겠지.’ 비닐봉지를 뜯었다. ‘OPEN HERE’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드립백 위의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글씨 부분을 뜯어냈다. 달콤한 커피 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 이 바보야!’
뜨거운 물을 차르르 부었다. 향긋한 커피 내음이 코 점막을 지나 머리끝까지 피어올랐다.
‘이 맛이었구나.’
커피 담은 리넨을 스쳐 간 커피 물. 민숭민숭했던 첫 드립백 커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미와 맛. 나는 커피를 마셨다.
멋도 모르고 지나간 나의 10대. 학교와 병원에서 보낸 그 이후의 날들. 그리고 지금, 지나고 있는 나의 첫 오십 대. 어떤 맛인지도 모른 채 맞이하고 있는 오늘. 두 번째는 더 잘살아 낼 수 있을 텐데. 두 번째는 정말 더 잘 살 수 있을까? 헛웃음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 좋은 커피 향. 다음번엔 더 맛있게 마실 수 있겠지.
OPEN HERE, 향긋한 하루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