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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May 26. 2023

내 마음의 보석상자

   가게에 들어선 순간 뭘 사러 왔는지 잊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는 것보다는 녀석에 꽂혀 발걸음이 절로 그쪽으로 이끌렸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투명 파우치가 눈에 들어왔다. 꼭 넣어야 할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손이 갔다. 무엇이든 집어넣어서는 서랍 한편에 두고 싶었다.   

  

   대학생이던 그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웃으면서 ‘다신교’라고 했었다. 부모님 따라 절에도 가고 친구 따라 성당에도 가고 다니던 대학은 미션스쿨이라 채플도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매주 한 번 있는 채플 시간엔 전교 학생들이 모였다. 채플 듣던 옆자리 여학생과 썸 탔다는 소문이 바람 타고 날아다녔기에 신입생들은 열심히 참석했다. 하지만 중간고사 무렵엔 채플의 인기도 시들시들해졌다. 교목실에선 ‘노래하는 채플’이란 타이틀로 멀어져 간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몇 번 참석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무대에서 노래하던 달콤한 목소리는 꿈처럼 아른하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해바라기’가 왔다는 소식에 강당이 미어터졌었다.     


   투명 파우치를 보는데 왜 해바라기가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덕분에 그 시절 해바라기가 불렀던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함께 재생됐다. 가사와 관계없이 제목만으로도 마음 설레는 노래였는데…. 기억에서 희미해진 가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 서로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햇빛에 타는 향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기에
   더 높게 빛나는 꿈을 사랑했었지
 

   가고 싶어 갈 수 없고 보고 싶어 볼 수 없는 영원 속에서
   가고 싶어 갈 수 없고 보고 싶어 볼 수 없는 영원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잊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하고 싶어
 

   잊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하고 싶어      

   -내 마음의 보석상자, 해바라기 -     


   입안으로 흥얼거리다 책상 위 투명 파우치를 보았다.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렸던 아이들과 같이 보던 저 녀석은 나이 하나 먹지 않았고, 그때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세상에 서 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 따스해지는 그 시절의 풍경들. 어쩌면 내 마음의 보석상자는 아이들이 태어나 걷고 말하며 같이 웃던 그때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삶에 반짝임이 필요할 때 선물처럼 뚜껑이 열리는. 지금 나는 내 마음의 작은 보석상자를 쓰다듬고 있다. 그때를 추억하며 미소 짓는 이 시간도 보석상자 어딘가에 담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sehyMP_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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