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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May 04. 2023

포로수용소 앞에 핀 붉은 잎들

   

   따스한 햇살이 평화롭게 비치는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유적지 한 곳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6‧25전쟁 직후 거제도는 그야말로 거대한 멜팅 팟(Melting Pot)이 되었다. 비록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원주민 10만 명에 피난민 15만 명, 전쟁포로 17만 명을 합쳐 42만 명의 메가시티가 된 것이다. 70년 지나 지금 인구 25만인 거제와 비교해 보면 아파트 같은 집단 주거 시설이 없었을 그때의 생활 환경은 상상이 힘들 정도로 열악했을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에 들어섰다. 북한군, 중공군, 남한에서 징집되어 북한군이 된 사람들 등 17만의 전쟁포로가 뒤섞여 있던 공간을 보존해 놓은 곳이다. 역사적인 비극의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다, 켜져 있는 모니터 앞에서 멈춰 섰다. ‘포로수용소 올림픽 게임’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제네바 협약 - 1864년에서 1949년에 걸쳐 전쟁포로의 존중 및 보호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체결된 국제 조약 - 때문일 것이다. 

   전쟁포로(POW·Prisoner Of War)는 전쟁 중 교전 상대방에게 붙잡혀 자유를 박탈당했으나 국제법 또는 특별협정에 의해 대우가 보장된 적국민(敵國民)을 말한다. 협약은 전쟁포로의 인간적 존엄성을 포함한 인도적 대우, 음식과 구호품 제공, 고문을 포함한 불법적 행동과 보복 조치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좌우의 극심한 이념 대립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고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어쨌든 전쟁이라는 피해 갈 수 없는 수레바퀴를 벗어난 이들이 웃음을 머금은 채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앞서 비극을 겪은 세대에 대한 연민과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었던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앞에 스러져 이국땅에 묻힌 묘비명들이 떠올랐다. 11개국의 2,320구의 UN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보았던 젊은이들의 아픈 이름들.      


   이곳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https://www.unmck.or.kr/kor/02_unmck/?mcode=0402010100)     


   1951년 새해 초 유엔사절단 방문을 앞두고 묘역을 푸른 잔디로 덮으라는 주문에 현대 정주영 회장이 김해평야의 보리밭 새싹을 옮겨 심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그곳. 부산 사는 몇 년 동안 시간 될 때마다 들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조차 생소했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스무 살 근처의 영령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걷다 마주친 또 다른 이름 ‘도은트 수로(Daunt Waterway)’. 열일곱이라는 가장 어린 나이로 잠들어 있는 호주 출신 도은트(J.P.Daunt) 일병을 기리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듯 묘역과 녹지구역 사이에 만들어진 물길이다. 그곳에 갈 때면 나는 늘 한참을 그 앞에 멈춰 서 그의 이름과 나이를 되뇌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달랬었다. 어쩌면 도은트 일병도 동영상 속 그들처럼 찬란한 젊음을 그의 나라에서 빛낼 수 있었을 텐데. 철조망 쳐진 포로수용소가 되었더라도 살아남은 그들과 이념의 극단에서 쓰러져 먼 이국땅에 묻힌 도은트 일병을 생각하며 포로수용소를 빠져나왔다. 

   몇 걸음 걷다 붉은 잎을 가진 풍성한 나무와 마주쳤다. 이파리 사이사이 보이는 하얀 꽃잎들이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었다. 붉은 잎이 눈에 익어 다가가서 보았더니 ‘홍가시나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이게, 그 홍가시나무인가? 길가에 울타리처럼 서 있는 홍가시나무는 허리 높이로 잘 다듬어져 있었기에 이렇게 풍성한 잎을 피워내는 키 큰 나무였다는 것을 몰랐었다. 길가에 서 있는 낮은 홍가시나무들을 보며 포로수용소를 돌아보았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키 크고 아름다운 홍가시나무처럼 온전히 그 삶을 지켜내고 피워 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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