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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n 27. 2023

여름밤 붉은 별이 마음에 스치운다

안타레스

   아무도 없는 전시 공간. 달빛 하나 없는 먹먹한 밤하늘 저편을 감상했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자, 사진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우주 공간에 인간이 발 디디고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려왔다. 하늘에 뿌려진 별 밭 가득한 곳을 보며 까닭 모를 동경에 온 마음 설렜다.      


   발은 땅에 머물러 있고 어린 마음은 저 하늘 넘어 헤매던 시절, 헤지고 낡은 표지의 책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린뱅크 방정식(Green Bank equation) 또는 세이건 방정식(Sagan equation)이라고도 불리는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은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방정식이다.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계획인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설립자이자 미국의 천문학자인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가 고안해서 드레이크 방정식이라 불린다.


   N = R* × fp × ne × fl × fi × fc × L     

   N = 우리은하 내 교신이 가능한 지적 외계생명체 문명의 수.

   R* = 우리은하 내에서 1년 동안 탄생하는 항성의 수.

   fp = 위의 항성들이 행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

   ne = 항성에 속한 행성 중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의 수.

   fl = 위 조건을 만족한 행성에서 생명체가 발생할 확률.

   fi = 발생한 생명체가 지적 문명으로 진화할 확률.

   fc = 발생한 지적 문명이 탐지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확률.

   L = 위의 조건을 만족한 지적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     


   최솟값들을 대입하면 N=20, 최댓값을 대입하면 N=50,000,000이 나오게 된다.      


   우리은하에 많으면 5천만 이상의 지적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에 얼마나 가슴 뛰었던지. 수업 마치고 밤길을 걸을 때도 앞이나 발끝보다는 고개 들어 별빛을 쫓아 걸었다. 단순한 별빛이 아니라 손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삶의 여정처럼 아스라한 별빛 따라 걷던 숱한 밤길들. 목적지는 알지만, 누구도 쉽사리 입에 담지 않는 삶의 길을 걸어가다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도 별빛은 늘 그곳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지치지 말고 그렇게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별빛을 안고 전시실을 나왔다. 전시실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친하게 지내던 같은 과 선배였다.

   “형님, 안녕하세요. 별 사진이 참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가져가요.” 

   그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도록에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킨 별 이름은 안타레스였다. 

   전시회가 끝나고 안타레스 사진이 배달되었다. 공간을 마련하여 조심스레 걸었다. 이른 아침 조용한 공간, 혼자 별 앞에 섰다. 암흑 공간과 점멸하는 별빛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안타레스는 전갈자리의 가장 밝은 알파 별이자 남쪽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다. 전갈자리가 여름을 대표한다면 겨울 밤하늘을 대표하는 것은 오리온자리다. 오리온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연인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은 둘의 관계를 싫어한 아폴론(아르테미스의 오빠)의 계략으로 연인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아폴론이 대지의 신에게 부탁해 전갈을 풀어 놓았고 그 전갈에 찔려 오리온이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아폴론은 전갈과 오리온 둘 다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으나 원한에 맺힌 두 별자리는 같은 하늘에 있을 수 없어 전갈자리의 계절이 지나야만 비로소 오리온자리가 떠오른다고 한다.

   1977년 9월 5일 지구를 떠난 우주 탐사선 보이저1호(Voyager 1)는 시속 6만km의 속도로 머나먼 어둠 속을 날아가고 있다. 그 속도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 지구에서 4.2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tauri)에 도달하는 데 16,700년이 걸린다고 하니 550광년 거리의 안타레스에는 상상조차 힘든 시간이 지나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닿을 수 없을지라도 멈추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1호는 1990년 2월 14일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었다. 그리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란 유명한 지구 사진을 남겼다. 헤지고 낡은 책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진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 모두 바로 태양 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까만 공간, 붉은색 별 무리 중 가장 밝은 안타레스. 550년 전 그곳을 출발해 지구에 닿은 전갈자리 옛 그림자 앞에 서 있다. ‘창백한 푸른 점’에 서서 닿을 수 없는 안타레스를 보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삶의 마지막 날까지 그곳에 닿을 수는 없겠지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을 찾아 끝까지 걸어 내었기에 ‘먼지 같은 작은 점’에서의 짧은 시간도 의미 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중, 윤동주-


pale blue dot(https://solarsystem.nasa.gov/resources/536/voyager-1s-pale-blue-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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