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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n 20. 2023

뒤끝 작렬 태종의 흔적, 광통교

광통교 전경(문화재청,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331104610000#)


   더운 해가 내리쬐기 전서둘러 길을 나섰다깨끗하게 정돈된 시청 광장 옆 인도 따라 선선한 아침 바람을 쐬며 걸었다이른 시간인데도 청계천 주변엔 서울세계도시문화축제에 참가한 하얀 부스들로 꽉 차 있었다

   계단을 내려섰다오래전 미남 배우 강동원이 나왔던 영화 전우치전에서 봤던 그곳이었다예전 청계천은 인왕산 백운동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이 맑은 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청량한 물 가득한 청계천 변을 걸었다모전교를 지나 광통교를 알리는 팻말을 만났다팻말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광통교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석교(돌다리)였다태종 10(1410), 홍수 때문에 토교(흙다리)였던 광통교가 유실되고 인명사고가 나자 돌다리로 새로 만든 것이다태종은 토교였던 광통교를 개축하면서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강씨(康氏)의 무덤에 있던 석물을 뜯어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현재 정동(貞洞)이라 불리는 덕수궁 주변 지명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에서 비롯된 것이다태종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짐작할 수 있듯이 제1차 왕자의 난과 연관 있을 것이다


   태조에게는 전 왕비 한씨(韓氏)에서 난 여섯 아들과 계비 강씨 소생의 두 아들이 있었다다섯째 이방원은 조선 개국에 공이 컸으나 정도전 등의 견제에개국공신에도 책봉되지 못했다또한 태조가 신덕왕후 강 씨에서 난 열한 살의 여덟째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에 앉히면서 계비 강 씨를 비롯한 정치적 세력과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되었다이후 정도전 측에서 사병 혁파를 통해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세력을 제거하려 하자 이방원은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을 비롯한 추종 세력을 제거하게 된다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은 폐위되어 귀양 가는 도중 살해되고방석의 형 방번도 함께 죽었다이방원이 권력을 얻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 1차 왕자의 난으로 1398년 일이다다행인진 모르겠지만 신덕왕후는 1396년에 사망하여 자식 둘이 비극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태조가 사망한 1408년 이후 태종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기까지 했다. 300년이 다 되어가는 1669년 음력 8월 5일 조선 18대 왕 현종에 와서야 복권되었다.


   광통교 교각 앞에 섰다계모의 무덤을 지키던 석물들을 아무렇게나 배치하여 사람들이 밟고 가게 만들었던 요샛말로 엄청난 뒤끝 작렬함을 보여준 태종의 흔적들정치적인 결정이었던지 아니면 역사의 여백에 숨겨진 원한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가족사를 짓밟은 비정한 권력 투쟁에 섬찟함을 느꼈다또 한편으로 그로부터 50년 뒤 발생한 역사적 비극도 떠올랐다

   태종의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이 조선 4대 왕 세종이 되었고 그의 첫째 아들이 5대 왕 문종이 되었다그러나 문종은 왕이 된 지 2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2살의 어린 세자가 왕이 되었다비극은 그렇게 반복된 것이다태종 이방원의 손자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어린 단종은 폐위되었다가 영월에서 16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또한 수양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자기 친동생인 안평대군도 역모의 죄로 유배 보낸 후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다수양은 그의 할아버지 이방원의 환생이었다

   어지러이 놓인 신덕왕후 무덤가에 있던 돌들의 아픈 얘기는 육백 년 아니천년을 더 흘렀을 청계천 물소리에 묻혀 역사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광통교에 올라섰다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도 피할 수 없었던 잔혹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졸졸 흐르는 청계천 물소리 따라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신덕왕후 정릉에 있던 석물(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atcUrl=keyword&recommendIdx=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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