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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n 19. 2023

싸워 자라는 우리?

   바람 부는 날, 시비(詩碑) 앞에 서서 소리 내 읊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시 구절마다 붉고 푸른 펜으로 메모했던 기억은 다 잊었지만, 흔들리는 깃발 따라 온몸이 요동치던 그 감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슴 울렁이게 하는 시어(詩語) 하나하나 작은 소리로 읽어 내고는 청마(靑馬) 시비를 돌아 통영 남망산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어선들과 여객선이 정박하던 시끌벅적했던 강구안은 꽃단장에 분칠한 새색시처럼 새초롬하게 앉아 있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강구안 바닷가, 평일 한낮 사람 없는 광장에는 배고픈 비둘기 신음만 간간이 들려왔다. 양쪽 주머니를 뒤져도 만져지는 것 없어 그네들을 조용히 지나쳐 오후를 걸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 우체국 앞을 지나며 시인을 생각해 본다. 오로라에 가까운 에메랄드빛 하늘은 어디서 보았을까? 아마도 가까이 있던 연시(戀詩)의 주인공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돌판 위에 새겨진 마지막 시 구절과는 다르게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다. 한산한 통영 우체국 앞에 서서 이층 창가에 기대어 섰을 시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애잔한 마음으로 잔걸음을 내디뎠다. 간지러운 땀방울 닦아내며 몇 발짝 걸었더니 반짝이는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 

   유치환이 그곳에 있었다. 통영의 두룡초등학교 교가가 새겨진 동판이었다. 통영의 웬만한 학교 교가는 그가 썼다. 그랬다. 나는 깃발이나 행복이란 시를 알기 전부터 그의 손으로 지은 노래를 불렀다. 

   ‘두룡포 갯바람에 쐬워 자라난 우리는 씩씩한 두룡 어린이’ 

   

   두룡포는 통영의 옛 이름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삼도수군통제영’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임진왜란 5년 뒤인 1603년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겨 오면서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던 두룡포는 통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교가 가사를 읽어 내려가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고민 없이 따라 불렀던 교가. 항상 의문이었지만 찾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가사. 몇십 년 동안 나의 기억에는 이렇게 저장되어 있었다. 

   ‘두룡포 갯바람에 싸워 자라는 우리는…’ 

   싸워 자라는. 삼십 년 넘게 이렇게 알고 있었다. 동판에 새겨진 원문 가사는 ‘쐬워’와 ‘자라난’이었다. 한 글자씩 다르게 불렀는데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뜻이 되었다. 두룡포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넓고도 강인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자랐어야 했는데. ‘싸워 자라는’이라 부르면서 그렇게 친구들과 ‘싸우고’ 화해하고 깔깔대고 또 싸우고 화해하며 자랐나 보다. 마흔 즈음의 시인이 광복된 조국의 어린이들이 싸우면서 자라나길 바라진 않았을 텐데. 철없는 꼬마들이 그 깊은 뜻도 모른 채 제 맘대로 불러왔으니 죄송한 마음 가득했다. 코발트블루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반짝이는 동판을 내려보며 천천히 가사를 따라 읽었다. 

   ‘백두의 뭇 뫼 들도 산 우림 하라/동해의 굽이 물도 모두 일어라/이순신 할아버님 충성이 어린/두룡포 갯바람에 쐬어 자라난/우리는 씩씩한 두룡 어린이/장하고도 우렁찬 어린이로세’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에 흔들려 바람 따라 걷다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서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도 다정한 사연을 보내고 있던 시인을 만났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내 함께했던 시인의 따뜻한 말씀을 보았다. 다시 만난 청마 유치환. 그이와 함께해서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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