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Jul 14. 2023

공후를 든 비천상과 공무도하가

상원사 범종 앞에서

   까마득히 보이는 계단. 표지판엔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올라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물었더니 ‘바로 위’라고 대답하곤 가벼운 걸음으로 멀어졌다. 얼마 안 남았어요, 라는 말. 산에서 만나는 이들이 웃으며 의례 하는 말이지만 바로 위라는 말은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60도 정도 경사진 계단 발치만 바라보며 올라갔다. 절 문 앞에 서서 숨 한 번 내쉬고 올려다보니 한고비 더 남아 있었다. 이곳에 온 까닭이 있기에 깊은 숨 들이쉬고 쏟아져 내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대웅전을 찾다 뒤돌아서는데 눈앞에 종각이 있었다. 두어 계단 내려서서 종 앞에 섰다. 

   서기 725년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진 범종.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신라 성덕대왕신종보다 45년 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 있는 범종 중 가장 오래된 종. 1,300년 동안 이 땅에 살아남은, 영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상원사 범종’이었다. 

   에밀레종에는 향로를 두 손에 받쳐 든 비천상(飛天像, 비천: 하늘에 살면서 하계 사람과 왕래한다는 여자 선인(仙人))이 조각되어 있지만, 상원사의 범종에는 두 비천이 각각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 새겨져 있었다. 구름 위에서 무릎을 세운 채 현악기와 관악기를 쥐고 있는 두 비천.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1,300년 동안 연주했을 두 악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公無渡河(공무도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마침내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이할꼬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떠올랐다. 내용을 다시 기록해 보면 이렇다. 

   고조선 시대 나루터에서 뱃사람(진졸)으로 일하는 곽리자고는 새벽부터 뱃일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곽리자고는 배를 몰려던 중, 한 백발의 광인이 술병을 든 채 강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뒤쫓아 온 광인의 아내가 남편을 말렸지만, 백수광인은 아내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더욱 깊이 물에 들어가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본 아내는 한참 울다가 집으로 가서 공후를 가지고 온 뒤 이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마친 후 남편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곽리자고는 집으로 가서 아내 여옥에게 사연을 전해주었고, 여옥은 공후를 꺼내 연주하며 남편이 전해 들은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안타까운 노래인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노래에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다.     


   공무도하가는 공후를 타면서 부른 노래기 때문에 ‘공후인’이라고도 한다. 국어 시간 밑줄 몇 번에 이리저리 해체되었던 가장 오래된 서정시가.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두 비천 중 오른쪽 비천이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공후다. 

   공무도하가에서 공후는 애달픈 여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것이다. 상원사 범종의 비천은 공후로 어떤 곡조를 풀어내고 있을까? 공후를 든 채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비천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알 수 없는 현세를 벗어나 내세를 꿈꾸며 속세를 벗어나고픈 고대인들의 열망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밤으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다. … 「공무도하가」만이 언제나 나를 사무치게 한다. 나는 내 뜻대로 안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나는 인생이다.’

   ― 신형철, 『인생의 역사』, p.36     


   작가는 공무도하가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상상했다. 절망과 사무치는 허무에 삶을 포기했던 이와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의 아픔을 상상하면서 작가는 아파했다.

   서글픈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헐떡거리며 올라왔던 계단이 보였다. 내려갈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흔들리는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오른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길은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 이 길을 보지 못했을까? 알았더라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가쁜 숨 내 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계단을 피해 평탄한 길을 돌아서 내려왔다. 수월해진 걸음 덕분인지 내려오는 내내 범종에 새겨진 공후를 든 비천상과 아픈 노래 공무도하가가 그리운 풍경으로 아른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밤 붉은 별이 마음에 스치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