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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Aug 30. 2023

습관이 무섭다

   

   어리다고 생각한 막내가 대학에 가고 처음 맞는 방학, 짧은 여행 계획을 세웠다. 더운 날씨를 피해 시원한 북국의 라벤더 꽃밭으로 정했다. 여행. 가슴 설레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한 달을 보냈다. 두 시간을 날아 설국이었던 그곳에 닿은 8월의 끝자락. 기대했던 선선함은 후끈 밀려오는 열기에 녹아내렸다. 그러면 어떠랴. 여.행. 아닌가? 

   도심에서 라벤더 꽃밭까지 두어 시간 정도 걸렸다. 세 명의 버스비와 대중교통 이용의 번잡함을 생각해 렌터카를 예약해 두었다. 렌터카 직원의 유창한 영어 설명을 듣고 설레는 걸음으로 나섰다. 차선 방향도 다르고 운전석도 반대 위치라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시청한 동영상에선 15분이면 적응된다고 했고 분명 쉬워 보였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의 차이를 깨닫는 데는 채 5분도 되지 걸리지 않았다. 

   습관처럼 운전석 쪽 문을 활짝 열었다. 텅 빈 좌석. 아, 우핸들이었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침착해야만 하는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우리말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음성에 뛰던 가슴이 차분해졌다. 가르쳐준 대로 map code로 목적지를 찍고 공항을 벗어나 이국의 정취를 달렸다. 야트막한 초록 나무와 파란 하늘, 느린 속도로 달리며 좌우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 시내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크지 않은 자동차가 좁은 시내 도로의 왼쪽으로만 붙으려 했다. 아침까지 의식하지 않고 달렸던 길, 운전대 위치 바뀌었다고 이렇게 어려울까?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인을 대상으로 이미지가 거꾸로 맺히는 안경을 쓰고 생활하게 한 실험이 있었다. 어지럽고 힘든 환경이었지만 30일 정도 지나자, 이미지가 똑바로 보였다고 한다. 뇌가 흐트러진 시각 정보를 보정하고 적응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우핸들에 적응하려면 나도 29일을 더 운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이드미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오른쪽 보닛 끝과 오른편 차선을 맞추었다. 마법처럼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도로 중앙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자동차 끝 선과 차선을 맞추느라 눈이 피곤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선 따라 에너지를 잔뜩 사용한 뇌세포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 아닌가. 탁 트인 풍광과 이방인의 자유에 감사한 이틀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차를 몰았다. 

   집으로 가는 길, 넓은 길과 큼직한 자동차들을 보는데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붙은 습관을 겨우 이틀 버렸을 뿐인데 웃음이 나왔다. 어지러운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혼미한 정신을 털어냈다. 어제는 오른쪽이었던 기준선을 왼편으로 다시 맞추고 핸들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당분간, 아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이 기준 따라 다시 일상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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