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학회 간다고 맡겨 놓은 나슈가 집에 온 지 이주가 되어간다. 어렸던 막내마저 대학생이 되어 타지로 나간 이후 빈집 같던 집에 생기가 돌았다. 아내는 자식에게 쏟던 정성으로 녀석을 보살폈다. 아침저녁으로 물 갈아주고 먹이통을 채워주며 애정 어린 눈길을 주었다. 아내의 빈 마음을 채워준 햄스터 ‘나슈’가 너무나 고마웠다.
인터넷을 찾아보던 아내는 서둘러 에어컨 전원을 켰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핸드폰 화면을 들이댔다. 햄스터 사육에 적당한 온도는 24도에서 26도 정도이고 더운 날씨에 노출된 햄스터는 잘못하면 해씨별로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추위에 민감한 아내는 정말로 더울 때만 에어컨을 켰는데, 저 작은 생명 때문에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원을 누른 것이다. 평소 더위에 민감한 나도 집에서는 아내의 온도에 맞춰 살아왔는데 내심 고마웠다. 나슈야 고마워.
시원하고 평화로운 날들 끝에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며칠 있으면 녀석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이 더운 날씨에 저 작은 아이가 견딜 수 있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햄스터 집 앞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조그만 녀석은 천하태평으로 먹이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등허리에 땀이 맺혀 에어컨 전원을 켰다.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아직 반짝이는 새 에어컨. 십 년 동안 사용하던 에어컨이 덜덜거리기도 했고 매년 온도계를 갱신하는 더위에 큰맘 먹고 산 것이다. 그런데 새 에어컨에서 알 수 없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다음날 방문한 서비스센터 기사님이 본인의 핸드폰을 열어 이리저리 만지더니 나를 불렀다.
“여기 보이시죠. 핸드폰 앱으로 에어컨 상태를 점검했는데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진단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전자제품의 상태를 핸드폰 프로그램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IoT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IoT는 사물인터넷으로 번역된 Internet of things의 줄임말로 사물(事物)에 무선 통신 기술이 장착된 전자장비를 전자제품 회사의 클라우드에 등록하여 핸드폰 앱으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아, 짧은 감탄사 끝에 녀석이 떠올랐다. 이제 조그만 햄스터 ‘나슈’는 우리가 집에 없어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 뉴스에서만 보던 신기술이 작은 햄스터의 생명 연장에 사용되다니.
며칠 뒤 편한 마음으로 짧은 여행에 나섰다. 햄찌 나슈와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핸드폰 앱을 열었다. 화면을 터치하여 나슈에게 바람을 보냈다. 파란 하늘 흰 구름 타고 산 너머 작은 집 귀퉁이까지 얼른 날아가길. 더운 숨 헐떡이는 나슈 코 끝에 선선한 생기 불어넣길. 햄스터 덕분에 말로만 듣던 IoT를 영접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사물인터넷이라. 국어사전에서 사물의 뜻을 찾아보다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생명 없이 우두커니 존재하는 것들만 사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로는 핸드폰 프로그램을 작동시킨 나도, 먼 곳에 있던 햄스터 나슈도, 그에게 신선한 생기 건네준 에어컨도 사물이었다.
그렇다면 클라우드는 나를 포함하여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들을 과학 기술로 연결하여 의미 있는 행동하는 존재가 되게 한 것이라고 하면 너무 호들갑스럽거나 비약인 걸까. 늦여름 불볕더위도 잠시 쉬었다 가는 한산한 오후. 햄스터 더위 구출 작전에서 만난 클라우드 신기술 그리고 사물의 존재 가치를 되짚어 보면서 어느 시인의 언어를 떠올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