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시작한 기타 레슨. 저녁 먹고 식탁 의자에 앉아 도레미부터 시작해서 여섯 줄 기타 줄을 뛰어다니는 손가락에 대고 아내는 한마디 던졌다. 설 명절에 시댁 가서 산적에 전 부쳐야 하는 아내 눈엔 밥 먹자마자 기타 줄 튕기는 남편이 고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2초 뒤 아내는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은 괜찮아요, 아이들도 다 크고…”
그러고는 기억나지 않는 명절 얘기를 꺼냈다. 넓은 프라이팬에 생선전과 고기 산적 부치느라 기름 냄새에 보이지 않는 음식 연기 마시고 있는데, 남편은 베란다 나가서 클라리넷을 불고 있었다 했다.
“그때는 클라리넷을 어떻게 해 버리고 싶었어요.”
웃으며 말하는 아내를 보니 기억에 없는 그 순간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러게,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고리타분한 역할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배려심 없던 철없는 남편이었던 건 틀림 없다. 어쨌든 지금 기타 줄 튕기는 나를 흘겨보진 않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는 아내를 보니 세월의 힘이란 게 고맙기도 하다. 관용의 마음도 넉넉해져 여유가 쌓이는 것 또한 그 덕분이리라.
내가 기타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그때 우리 집은 방 한 칸을 대학생에게 세를 놓고 있었다. 스물 조금 넘었을 대학생 형은 가끔 툇마루에 앉아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눈감고 잔잔한 기타 소리를 들었던 아스라한 기억은 꽤 오래갔다.
그 후로 몇 년 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동아리에서 한 학년 위 선배는 늘 기타를 쳤다. 영화 금지된 장난의 OST인 Romance의 애절한 감성이며 ‘너의 침묵에 메마른 너의 입술~’ 가사 따라 일렁이던 고운 기타 선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삼십 년도 더 지난 나이에 그때 들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따라서 쳐본다. 콩나물 음표를 보며 손가락 하나하나 짚어가며 튕기는 기타 줄에 열일곱 어린 청년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무렴, 어떤가? 늦게 시작해서 늦게 이루더라도 기타 하나 들고 계속 걸어가면 기타 선율에 심취해서 웃고 있던 열일곱 청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노랫가락에 자뻑하는 그날까지.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는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 ‘바위섬’을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는 날까지. 손가락이 부르트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타를 익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