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똑’
인사 담당 원장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외래 직원 세 명이 퇴사 의사를 밝혔으니 설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난감했다. 그중 한 명은 근무한 지 십 년이 넘은 데다가 접종이며 약품 관리에 그야말로 베테랑 직원이다.
다음날 점심시간, 잠시 대화를 나눴다. 아동병원 근무에 지치기도 하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병원의 핵심 인력이니 남아달라며 이런저런 얘기로 설득했지만, 완강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는 말에 직원은 한숨 내쉬고 돌아나갔다. 환자 몇을 본 뒤 잠시 쉬는 틈에 얼굴 한가득 피곤이 쌓인 직원 A가 들어와서는 말을 꺼냈다.
“원장님, 보호자가 말 한마디만 강하게 던져도 뭐가 치밀어 올라 못 견디겠어요. 쉬어야겠습니다.”
얼마나 쉬면 회복될 거 같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머뭇거렸다.
“유급 병가 일주일 줄 테니 좀 쉬었다 오세요.”
A는 아무런 대답 없이 돌아서 나갔다. 며칠 뒤 설득이 필요하다는 세 명 중 한 명은 퇴사했고 나머지 두 명은 열흘 남짓 일하면 그만둔다고 했다. 외래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을 불러 모집 공고는 올렸는지 이력서는 들어오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원장님, 이력서 하나 안 들어와요. 그리고 평일 밤 열한 시까지, 주말은 여섯 시까지 근무한다고 하면 전화를 끊어버려요.”
할 말이 없었다. 십 년 전 소아청소년과 의사 몇 명과 함께 아동병원을 하면서 평일은 저녁 아홉 시, 토요일 네 시, 일요일 한 시까지 아픈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년 전부터 소아 경증 환자를 저녁 늦게까지 진료하는 달빛 어린이병원에 참가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진료 시간이 평일 저녁 아홉 시에서 밤 열한 시,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휴일도 저녁 여섯 시까지 근무시간이 늘어나면서 직원들의 피로도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달빛 병원에 참가하던 다른 지역 아동병원 몇도 그만두는 직원이 늘어나고 근무하던 소아과 의사들도 이직하면서 달빛 병원을 못 하게 되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고열로 쳐지거나 토하고 설사해서 늘어지는 아기들 또 갑작스러운 열성경련으로 소아과 의사의 진찰과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정말 필요한 곳이지만 평일 밤늦게, 주말 오후까지 일해야 하는 근무조건에 일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 없다.
같이 근무하는 소아과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근무한다고 해도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그리고 추석이며 설에도 일하기가 쉽지는 않다. 궁여지책으로 야간근무와 주말 근무의 로딩을 줄이기 위해 봉직의(월급쟁이 의사를 이르는 말) 구하는 글을 두어 달 올렸지만, 전화 연락은 두 번뿐이었다. 근무조건도 문제지만 서울에서 네 시간 걸리는 곳이라 하면 일반 직원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하겠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명감만으로 작은 시골 동네에 와서 일해달라고 읍소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논어(論語)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여쭈었다. “한마디 말 가운데 평생 실천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서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진 용서할 서(恕)를 내세워 유명한 구절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을 설파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얼마 동안은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아픈 아이들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기라도 하거나 체력의 한계로 번아웃이 온다면 멈춘 자전거가 쓰러지듯 내가 서 있는 이 시스템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만두는 세 직원을 보면서 ‘기소불욕 물시어인’을 되뇌어 본다. 어찌하면 저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들과 웃으면서 ‘같은 마음’으로 아픈 아이들을 보살피자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