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유로운 토요일,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오랜만에 전혁림 미술관에 들렀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는데 어디선가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미술관 뒤편 주차장과 연결된 산기슭 입구였다. 보라색 상의에 물방울무늬 바지, 벙거지를 눌러쓴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거기 있었다.
“여기 어디요?”
“할머니, 여기 봉평동입니다. 집이 어디세요?”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몇 차례 물어본 후에야 용화사 쪽이 집이라고 하셨다. 빨리 걸으면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 말도 믿을 수 없었다. 단서를 찾으려고 이것저것 여쭤보다 연세가 어찌 되시느냐고 물었다.
“나이는 모르겠고, 잔나비띠야.”
잔나비띠라는 할머니 대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노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비음 섞인 매혹적인 음색의 가수 잔나비가 떠올랐을것이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하지만 나는 대학 생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막내아들이 생각났다. 아들도 할머니와 같은 잔나비띠다. 나이는 모르겠고 잔나비띠라던 할머니. 나이도 집도 잃은 채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 한쪽이 저릿해졌다.
경찰에 전화해서 집을 찾아드리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남사스럽다며 손사래 치셨다. 혼자서는 거동이 힘들어 보이고 치매도 있는 것 같은 할머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112에 전화했다.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순찰차가 도착했다. 삼십 대 초반, 사십 대 중반의 인상 좋은 경찰 두 분이 내렸다. 서로 가볍게 인사하고 사연을 얘기했다. 혹시 이 지역에서 유명한 분이냐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경찰관이 할머니 앞에 서서 이것저것 묻더니 순찰차에 태웠다. 멀어져 가는 순찰차에 안심은 되었지만, 다음엔 또 그다음 번에는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잔나비띠. 1944년생이면 79세, 1932년생이면 91세. 주름에 가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얼마의 세월 동안 기억을 잃은 채 살아왔을까? 65세 이상 여성에게 더 많이 발병하는 치매. 만약 그때부터였다면 족히 10년 이상 인간 존엄성을 잃고 살아왔을 것이다. 돌아가신 지도 까마득한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고 얘기하던 잔나비띠 할머니의 간절한 목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통계청에서 ‘2022년도 우리나라 인구의 주요 사망원인’을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5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자살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인구 10만 명당 61명으로 사망률 3위에 올라서면서 폐렴과 뇌혈관질환, 자살이 4위 아래로 밀려났다. 2018년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 22.7명으로 9위였던 알츠하이머병이 7위로 올라선 것이 눈에 띄었다.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가 최초로 보고한 퇴행성 뇌 질환, 즉 치매가 알츠하이머병이다. 최근 기억부터 서서히 문제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복합적인 인지기능 이상으로 진행되어 결국에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못 하게 된다. 음식을 삼키다 폐로 들어가서 생기는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 옆에서 잘 보살펴 준다면 흡인성 폐렴으로 급사하는 경우는 줄어들겠지만 잔나비띠 그 할머니는 혼자 산다고 하셨다. 할머니 말이 사실이 아니길, 부디 보살펴 줄 가족이 곁에 있기를 바라며 미술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조각은 할머니를 태운 순찰차를 따라가고 있었다.
내 할아버지도 치매와 중병을 앓으셨다. 중학생 때,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어머니는 늘 변이 묻은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계셨다. 인간 존엄성을 잃은 채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곁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냈을 어머니. 불쑥 떠오른 생각에 또 마음이 아프다. 나이는 모르겠고, 잔나비띠야 말하던 조그맣던 할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 저릿했던 기억을 애써 흘려보내고 그림 앞에 섰다. 남도의 푸른빛으로 가득한 보석 같은 풍경 앞에서 잔나비띠 할머니의 안녕을 빌었다.
월간 에세이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지면을 할애해 주신 김신영 편집장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