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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Jul 05. 2024

당일치기 서울행

제텔카스텐 9

   새벽 세 시 삼십 분 알람. 눌어붙은 눈꺼풀 들어 올렸다. 

   이게, 다 그놈의 일기 예보 덕분이야. 지난 저녁 일곱 시, 휴대폰 문자 진동음이 울렸다. 내일 아침 서울 가는 일곱 시 비행기는 강한 비바람에 결항되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었다. 부산역에서 다섯 시 이십 분 출발하는 KTX를 서둘러 예약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왜 그 새벽에 서울로 내뛰어야 하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이십 년 이상 살아왔지만 소아과 의사로만 살아가기엔 버거운 세태가 되어버려서다. 2013년 합계출생률 1.18.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작년 2023년 합계출생률은 0.72. 출생률이 급락하니 소아과 의사가 필요한 아이들도 급감했다. 

   자주 아픈 4세 미만 아이 통계를 찾아보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2013년 17,000명 정도였으나 7년 뒤인 2020년에는 11,000명 정도로 4세 미만 아이 숫자가 35%나 감소했다. 합계출생률 급락은 여지없이 인구 감소로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버텨오고 있으나 더는 가만있을 수 없어 생존의 다른 도구 하나 익히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야만 했다.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부산발 서울행 기차. 차량 한 칸을 가득 채운 다양한 사람들. 저이들도 각자의 사연으로 새벽부터 고단한 몸과 마음 기차에 누이고 서울로 가는 것이리라. 서울역, 동작을 거쳐 마침내 봉은사역. 일요일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하는 초음파 강의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피곤을 느낄 새도 없이 이어진 네 시간 강의와 실습. 오전 수업 마치고 테이블 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노곤한 눈 크게 뜨고 밥 한 숟갈 한 숟갈 꼭꼭 씹었다. 그리고 네 시까지 이어진 강의. 빈틈없이 빠듯한 일정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여유 부릴 틈도 없이 다시 서울역으로 향했다. 플랫폼 앞 가게에서 샌드위치 조각 하나 사고 부산행 5시 20분 기차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KTX 안에서야 쉴 수 있었던 하루였다.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메모(제텔) 상자(카스텐)를 말합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 조각들을 기록하고 수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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