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사진을 지브리 풍으로 그려 달라는 프롬프트에 AI는 한 치 고민 없이 답을 내놓았다. 2022년 11월 30일 시작한 ChatGPT는 단순한 챗봇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잔잔한 물결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커다란 파도가 되어 있었다. AI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ChatGPT로 자료를 정리하다 문득 AI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2024년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이선 몰릭’이 지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AI의 페르소나를 정해둠으로써 더 나은 답변을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소개해 보겠다.”란 대목에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영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던 네트워크-AI의 각성으로 쫓겨난 인간의 이야기다. 과연 인간은 페르소나를 장착한 AI를 인간에게 무해한 도구로 계속 사용할 수 있을까?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이다. 이 가면은 연극 속 인물을 대변했고 현재는 ‘사회적 역할 또는 얼굴’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 얼굴에 씌운 페르소나(Persona)를 하나하나씩 벗어본다. 아버지, 아들, 남편, 의사, 친구…. 벗어던져도 아직 몇 개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몇 개의 페르소나가 더 필요할까?
내 삶에 겹겹이 씌워진 페르소나들을 생각하던 찰나, 문득 몇 시간 전 진료실에서 만난 한 아이가 떠올랐다. 엄마 무릎에 앉아 입 꽉 다문 채 도리질하며 온 힘으로 저항하고 발버둥 치던 아이였다. 아이 엄마가 몸통과 두 손을 꽉 부여잡았고 외래 직원이 머리를 힘껏 잡고 나서야 아이를 괴롭혔던 입안 붉은 목젖을 볼 수 있었다. 진찰 마치고 자유로워진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헛웃음이 나왔다. 일 년도 채 살지 않은 저 녀석이 내게 보여준 두 얼굴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사회에서 두루 쓰이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관계를 위해 겉으로 내세우는 태도나 배려를 뜻하는 ‘다테마에’, 그와 대비되는 속마음을 뜻하는 것이 ‘혼네’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면 대부분 안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관계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현대사회는 타인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다테마에’야말로 갈등을 피하고자 자신을 절제하고 타인과 거리를 지키게 하는 미덕이지 싶다.
인간은 가면 아래 또 다른 속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두 얼굴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AI는 상황에 따라 그리고 질문하는 상대에 따라 적절한 겉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자동화된 다테마에를 시전하고 있다. AI는 속마음이 없는 기계에 불과할까? 정말 그렇다면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속 이야기는 작가의 허무맹랑한 공상일 뿐일 것이다.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1950년에 튜링 테스트란 것을 제안했다. 기계가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AI가 완전한 ‘지능’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 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2025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교(UCSD) 연구팀은 GPT-4.5가 고전적인 ‘세 사람 튜링 테스트’에서 인간보다 더 자주 인간으로 오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특정 인격(페르소나)을 부여한 GPT-4.5는 73%의 확률로 인간으로 오인되었으며, 이는 실제 인간 참가자보다 높은 수치였다. 그 수치를 본 순간, 서늘한 기운이 등을 타고 지나갔다. 정말 AI는 우리보다 더 ‘우리처럼’ 되어가고 있는 걸까?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인간을 배터리로 인지한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인간이 AI와 구별되는 ‘인간다움’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인간은 흔들리고, 상처받고, 사랑하고, 때로는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런 결핍과 불완전함이야말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앞으로 몇십 년 이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AI가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보이는 날이 올지라도 나는 그날까지 화면의 바깥에서 진짜 아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는 소아과 의사로 남고 싶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내가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빛, 온몸으로 표현하는 작은 감정들까지는 닿지 못할 것이다. AI가 채워줄 수 없는 그 틈을 나만의 걸음으로 조용히 메우며 오늘도 마주 앉은 아이들의 무수한 순간들을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