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정확한 독일은 없었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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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비행기였지만,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하고 싶어 아침 8시쯤 호텔을 나섰다. 8시 25분 기차를 타면 11시 30분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 점심을 먹고 공항 전망대에서 이착륙 장면을 구경한 뒤 탑승장으로 향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문득, 작년 오사카 공항 전망대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전망대’라는 표지를 따라가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 수십 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다녔건만, 그날 처음 알았다. 비행기를 보는 것이 이렇게 장관일 수 있다는 걸.

지상에서 조용히 이동하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보자 어쩐지 반가웠다. 안전 때문인지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직사각형으로 뚫린 공간이 있었고, 거기에 머리를 갖다 대자 비행기의 윤곽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옆에 있던 중년 남성은 박격포만 한 렌즈를 들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활주로를 내달리던 비행기 한 대가 땅을 떨치듯 솟구쳤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추진력, 양력, 베르누이의 법칙 같은 과학적 원리로 나는 비행기일 텐데,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쇳덩이가 하늘을 나는 걸까.

세 시간 뒤면 또 다른 비행기가 자유를 향해 비상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플랫폼에 도착해 전광판을 확인했다. 8시 25분, 내가 탈 기차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8시 55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아뿔사!’ 내가 알고 있던 정확한 독일은 없었다. 인터넷에는 ‘연착’, ‘지연’, ‘지각’이라는 단어가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 30분 정도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진정하려 했다. 6시 비행기만 탈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숫자가 바뀌었다. 9시 55분. 그래도 오후 1시 전에는 도착하겠구나 싶어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그 기대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예매 앱을 켰더니, 화면엔 낯선 단어 하나가 떴다.

“Cancelled.”

사유는 ‘Unexpected staff shortage’. 예상치 못한 인력 부족이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순간 심장박동이 분당 90회를 넘었다. 옆에 있던 외국인에게 보여주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It's Europe.”

1층으로 내려가자 플랫폼은 혼잡했다. 역무원을 붙잡아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무 기차나 타고 가세요.”

정말 아무 기차나 타도 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시 공항까지의 노선을 확인하고, 도착 시간을 계산한 뒤 또 기다렸다.

드디어 기차 한 대가 들어왔고 청소하는 직원이 올라탄 뒤 문이 닫혔다. 출입구 앞에 선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만, 모두가 마음속에 약간의 긴장을 품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2등석 기차는 예약 좌석엔 빨간 불, 비예약 좌석엔 초록 불이 들어온다. 문이 열리자마자 캐리어를 수화물 칸에 밀어넣고, 초록불을 따라 재빨리 움직였다. 자리에 앉아 깊게 숨을 들이켰다. 드디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몸을 실은 것이다.

어느새 자리는 가득 찼고, 아까 대화를 나눴던 외국인이 내 앞을 지나갔다. 어색한 눈웃음을 주고받은 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항에 도착했고, 다행히 비행기에도 늦지 않게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28시간 뒤.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데, 문득 그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Unexpected staff shortage.’

검색해보니 기관사나 승무원의 갑작스러운 병가에도 기차는 운행이 중단된다고 했다. 단 한 사람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규정 때문이었다.

‘아무 기차나 타고 가세요.’

현지인의 체념 어린 웃음, 하루를 넘긴 여정의 고단함, 짜증. 그 모든 감정이 다시 떠올랐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는지는 사회와 시스템에 따라 다르다.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은, 가장 나쁜 결과를 만든다. 모든 안전 규정과 법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날은 내게 불편한 하루였다. 아니, ‘빨리빨리’에 길든 나에게 유럽이 던진 다른 시간의 체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준비되지 않은 기차가 출발하지 않는 나라에 조금은 안심하게 됐다.

맥주잔을 내려놓고 TV를 켰다. 때마침, 삼국지를 모티프로 한 영화가 방영 중이었다. 순간,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제갈량. 유비를 도와 촉한을 세운 지략가. 충성의 상징으로 알려진 그의 ‘출사표’는,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북벌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이후, 촉한도 천천히 무너졌다.

TV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를 곱씹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준비되지 않은 출발은, 결국 길을 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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