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36색 웃는 얼굴

1부_위로와 위로가 오가는 곳 , 진료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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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에다 숨쉬기 힘들어 헐떡대며 늘어져 있던 다섯 살 K. 며칠간의 치료 끝에 열이 내리고 기침도 잦아들었다. 입원 첫날 회진 시간엔 기운 없이 누워 있던 녀석이 다음 날에는 앉아 있었고 그다음 날은 제 손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제는 배꼽인사를 하더니 빨리 진찰 하라는 듯이 옷을 올렸다. 고개를 옆으로 비비 꼰 모양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많이 좋아졌네요. 내일 집에 갑시다.”

병실을 나서려는데, K가 침대에서 무언가를 가져와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린, 활짝 웃고 있는 의사의 얼굴이었다.

“선생님 오시면 드린다고 어제 온종일 그렸어요.”

“이게 선생님이야? 정말 잘 그렸네!”

칭찬에 수줍어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병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30년은 젊어 보이는 내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났다. 이 그림값을 어떻게 치러야 하나. 서둘러 점심을 먹고 병원 앞 문구점으로 향했다. 오후 회진 시간, 나는 K에게 36색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건넸다. 선물을 받고 입이 귀에 걸린 아이를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왕자표 크레파스’가 떠올랐다.

12색이었는지 36색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살색은 유난히 빨리 닳았다. 크레파스를 감싼 종이를 몇 번이나 벗겨내고 써야만 했다. 뭉툭해서 손에 쥐기도 불편한 살색 크레파스를 꼭 잡고선 커다랗게 그린 얼굴에 빡빡하게 색칠하던 아련한 기억 한 조각. 어린 국민학교 아이에게 살색은 ‘살색’ 하나뿐이었다. 살색이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의 작은 틈새도 없었다.

아이가 그려준 초상화에 잊고 있던 왕자파스, 살색과 관련된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가 메꾸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도 늘어난다는 기사는 살색과 관련된 논쟁도 함께 다루었다. 2001년 8월 ‘살색이란 명칭은 인종차별’이란 진정서가 인권위원회에 들어왔고 같은 해 11월 살색은 연주황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3년 뒤 예상치 못한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인권위에 ‘대한민국 어린이들’이란 이름으로 진정서가 제출되었다. ‘연주황색’이란 명칭이 어려운 한자여서 이를 자주 쓰는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자 인권침해란 내용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어린이들이 연주황색을 살구색으로 다시 바꾸었다.

K가 준 그림 속 내 얼굴은 무슨 색이었을까. ‘살색’을 모르는 아이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색을 골랐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몇몇 어른과, 자기 목소리를 낸 어린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다채로운 색을 품게 된 것이 아닐까.

진료실에 방문하는 사람은 굉장히 다양하다. 태어난 지 30일도 안 된 신생아, 코로나 예방접종 하러 오신 팔십 어르신, 도시의 일감이 사라져 나이지리아로 떠난 중년의 프랑스 남성, 열나는 아들과 함께 히잡을 쓰고 온 말레이시아 여성까지. 나이대도 촘촘하고 피부색도 제각각이다. 나는 그들을 차별 없이 대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K의 그림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했던 차별이 있지 않나 돌아보게 했다.

어른은 증상을 조곤조곤 설명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주사 맞았던 기억 있는 두 돌 안 된 아이들은 진료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울기 시작한다. 청진기를 대면 더 강해지는 고음역의 울음소리에 아이 엄마의 말소리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다. 소음 측정 앱으로는 무려 85dB,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얘야, 빨리 낫게 해줄게.”

달래는 말도 소용없을 땐, 서둘러 진찰을 마칠 수밖에 없다. 놓치는 것 없이 살피려 애쓰지만, 짧게 끝난 진찰이 엄마에게는 ‘작은 차별’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울 앞에 섰다. 오늘만 해도 수십 번 닦은 손을 한 번 더 닦으며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아이들 눈에 나는 어떤 얼굴로 비칠까? K가 그려준 그림 속 의사처럼,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앞에서도 늘 한결같이 웃는 얼굴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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