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완치되었지만

1부_위로와 위로가 오가는 곳 , 진료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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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뇌전증 진단을 받고 꾸준히 치료받던 K가 있었다. 고3 무렵엔 약을 거의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져, 나는 “대학생이 되면 완치를 목표로 해보자”라고 약속했다. 대학에 진학한 K는 순조롭게 약을 줄여나갔다. 하지만 종강을 앞둔 어느 날, 시험 해방감에 PC방에서 밤을 새운 것이 화근이 되어 발작이 재발하고 말았다. 수면 부족이 뇌전증 환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K는 자신의 몸으로 확인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치료 기간이 3년은 더 늘어날 거라는 안타까운 말을 전해야 했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서던 청년의 뒷모습에 내 마음도 무거웠다.

그로부터 몇 년 뒤, K는 기어코 병을 이겨냈다. 약을 끊고도 발작이 없어 마침내 ‘완치’ 판정받던 날, 환하게 웃는 청년을 보며 나도 온종일 기뻤다. K는 군 복무를 위해 다시 나를 찾아왔고,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성실히 의무를 마쳤다.

그런데 또 몇 해가 지나, K의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좋은 성적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번번이 취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군대’였다. 면접관들은 공익근무 사유를 집요하게 물었고, ‘뇌전증으로 치료받았지만, 지금은 완치되었다’라는 정직한 대답 뒤에는 늘 불합격 통보가 따라왔다고 했다.

아버지의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K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되짚어보았다. 5년 이상 발작이 없는 상태. 의학계에서는 이를 ‘관해(remission)’ 또는 ‘완치’라고 부른다. K는 그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나라에서 정한 산업안전 보건지침을 떠올려보아도 마찬가지였다. K의 상태는 ‘비교적 안전한 업무’에 해당했고, 업무 제한 없이 근무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공무원 채용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K의 취업을 막을 제도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문제는 규정이 아니라 ‘낙인’이었다. 뇌전증의 일차적 치료 목표는 발작 조절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개선해 온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의 벽이 되어 그 앞을 가로막는다. 국내 뇌전증 환자의 실업률이 평균의 다섯 배에 달한다는 씁쓸한 통계가 K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온전히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완치된 K는, 이 사회 안에서는 아직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아이는 완치되었다. 그런데도 병을 이겨낸 청년의 발목을 사회가 붙잡고 있는 이 현실이, 꼭 오랜 시간 그를 치료한 내 탓만 같아 미안했다. 기운 없이 돌아서는 아버지의 어깨 위로, 치료가 길어졌다는 말에 힘없이 돌아서던 그 옛날 K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K는 과연 언제쯤, ‘온전히’ 완치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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