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119의 전화가 온 지 5분쯤 지났을까. 구급대원이 숨을 헐떡이는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진료실로 뛰어 들어왔다. 까만 눈동자의 아이는 의식은 또렷했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아래가 쑥쑥 들어갈 정도로 힘겨워했다. 어린이집에서 2~3분가량 경련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아이에게 수액과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고, 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한바탕 응급 처치가 끝나고 아이가 안정을 찾자, 나는 혈액검사와 엑스레이를 확인한 뒤 입원 처방을 내렸다. 잠시 후,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이 아빠가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입원비가 부담스러우니,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보험 정보는 ‘일반’으로, 모든 치료비를 본인이 내야 하는 상태였다. 최근 근로 계약이 끝나 본국에 다녀오면서 의료보험이 중단된 모양이었다.
숨을 헐떡이는 제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돈 때문에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 아빠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원무과장을 조용히 불렀다. “과장님, 잠시 와보세요.” 사정을 설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달라 부탁한 뒤, 아이 아빠에게는 우선 병실로 올라가 아이 곁에 계시라고 말했다. 두어 시간 뒤, 원무과장으로부터 보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곧장 아이의 병실로 향했다. 얕게 숨 쉬며 잠든 아이 곁에서, 아빠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보험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충분히 치료받고 갑시다.”
내 말에, 아이 아빠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표정을 풀었다. 청진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그는 서툰 한국말로 몇 번이고 “고맙습니다” 인사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덩달아 내 마음도 펴지는 듯했다.
아프리카 국적의 어린 친구. 나는 아이가 빨리 나아지기를 바라며, 그 나라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1960년, 1인당 GDP가 220달러로 당시 158달러였던 우리나라보다 잘살았던 나라. 하지만 군부 쿠데타와 30년이 넘는 장기 집권, 그리고 끝나지 않은 내전으로 인해 2021년 GDP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128달러가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는 오랜 내전으로 어린이와 여성의 인권이 처참히 유린당한 기록들이 가득했다.
며칠 뒤, 아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퇴원했다. 젊은 아빠는 이제 한결 단단해진 어깨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잔혹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이곳까지 온 그들의 새로운 길이, 부디 내내 평탄하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