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의료시설이 취약한 지역에 삼 년을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 이 년 차인 내게까지 차례가 온 것이었다.
해양대학의 학생 실습선을 타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 필리핀,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삼십 일의 일정이었다. 배 앞에 서니 압도되었다.
배의 전체 길이가 무려 백 미터가 넘었고 높이도 아파트 몇 층이나 되어 보였다.
한 사람이 누우면 딱 들어맞는 침대에다 세면대 하나 작은 옷장이 있는 작은 방이 배정되었다.
출항 준비를 하는 동안 배 앞에서 한 달 뒤나 보게 될 육지와 작별 인사를 가볍게 하고
선장님 방에 모여 여러 기관에서 파견 오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에 들어갔다.
건강한 청년들이 실습하는 배라 크게 아픈 사람이 없어 배 안의 주요 인사들과 사교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업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방에서 책을 읽고 팔 굽혀 펴기를 하며 시간 맞춰 울리는 종소리에
마치 파블로프의 견공처럼 일 층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서 한층 아래 학생 식당 옆의 휴게실에서
비디오를 보고 방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주방의 요리사 한 분이 엉덩이가 아프다고 해서 보았더니
오른쪽 대퇴 위쪽에 고름이 차 있어 절개하고 빼내었다.
고름을 다 제거하니 큰 포켓이 생겨 봉합할 수가 없어 살이 차오길 기다려야 했다.
삼십일 중 제일 중환자였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잠이 오질 않아 선교(bridge, 조종실)로 올라갔다.
일등항해사가 있었고 이 학교 출신이었다. 짧은 얘기를 나누고 갑판으로 나섰다.
하늘에서 밝은 달이 은빛 광선을 내리비추고 있었다.
몇 노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빠르지 않은 배의 속도에 맞춰 달빛이 따라오고 있었다.
먼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배 주변으로만 줌인 되어 빛나는 달빛과
그 달빛을 따라 물고기 몇 마리가 뛰어오르는 모습이라니.
방으로 돌아왔으나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밤 풍경이 눈에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빠삐용처럼 지냈던 나의 방은 내내 잊히지 않는 휴식의 바다가 되었다.
달과 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