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눈을 떴다.
창밖에는 깜깜한 공기만이 가득 차 있었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아들은
여전히 한밤중에 머물러 있었다.
고등학교 이학년 겨울방학 동안 집을 떠나 삼백오십 킬로미터 떨어진 기숙학원에
공부하러 가기로 한 아이를 낮 한 시까지 데려다줘야 해서 서둘러야 했다.
아내가 맞춰 놓은 알람은 혼자 울었었나 보다.
이부자리, 속옷이며 책 가지들을 트렁크에 싣고 찹찹한 새벽 공기를 뚫고 용인으로 차를 몰았다.
이 년 넘게 수그러들 줄 모르는 코로나 감염에 수학여행도 당일치기로 경주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쳤는데
삼십 오일을 집 떠나서 생활해야 할 아들 걱정에 아내의 눈가엔 어느새 작은 물기가 비쳐
아들에게 “ 네 엄마, 벌써 아들 보고 싶을 거라고 우는데 어떡하니 ?”
막둥이도 마음이 심란한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전날엔 “아들 덕분에 엄마 아빠 여행하고 좋겠어요!” 하며 웃던 아이인데.
열한 시쯤 학원에서 삼 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서울 있는 딸아이는 십 분 뒤에 도착하여 동생을 안아주었다.
무슨 들밥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메뉴였는데 아마도 경기도에서 농사일 중에 먹는 새참을 말하는 것 같았다. 농사란 게 씨뿌리고 물 대고 잡초를 솎아내야 수확할 수 있듯이 이번 기회가 훌륭한 거름이 되면 좋겠는데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어색하게 웃는 막내를 내려주고 돌아 나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눈물을 조금 흘렸다.
그래도 아들 덕분에 오랜만에 둘이서 여행을 하니 좋다고 말했더니 같이 웃어 주는 아내.
가보고 싶다던 한옥마을 한 군데서 하룻밤을 보내고 맛있어 보이는 깨강정 몇 개를 포장해서
통영 부모님 댁에 잠시 들렀다.
설날이 지난 이월 초나 집에 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설날에도 손주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무척 서운해하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갔을 때 얘기를 꺼내셨다.
큰아들 서울 보내고 몇 달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만들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고 하시며
“니도 그럴 거다.”라는 어머니 말씀에 괜스레 마음이 아려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는 “아들 올 때까지 라면은 안 끓여 줄 거에요.”,
“국수도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니 한 달간 안 먹을 거예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흘리더니 “내일 골뱅이 넣고 쫄면 해 먹어요.”
살며시 웃으며 아들은 좋아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그건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쫄면을 만들면서도 아들 생각에 찔끔할 아내를 보면서
또, 몇 달을 아들 생각 애써 감추고 지내다 방학 때나 그 아들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심한 아들이었고 무심할 수도 있는 아버지이기도 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내일 먹을 맛있는 골뱅이 쫄면 생각에 절로 나오는 콧노래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맜있는 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