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오기 전에 아쉬움부터 먼저 온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뜨겁지만 시원한 비전의 맛이 들어간 육수부터 나오면 스테인리스 이중 컵에 부어 후~후 불어 마시다가 적당하게 배합된 냉면과 가오리무침 그리고 계란이 얹힌 함흥냉면 그릇을 지긋이 내려보고는 한 젓가락 가득 면발을 감아올려 입안 가득 채워 넣는다. 알싸한 매운맛이 입안 점막에 달라붙어 세포 하나하나를 톡톡 건드리다 면발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같이 가서 식도를 두드리고는 희미해져 간다. 냉면을 주문하면 삶은 계란 일부가 올라오는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냉면 그릇에는 계란 한 알이 담겨 오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천 원 더 받는 곱빼기보다도 많은 면발도 함께 말이다.
우연히 알게 되어 오 년 넘게 다니고 있는 함흥냉면 집이다. 처음엔 그냥 맛있는 냉면 가게이겠거니 하고 들렀다가 돌아서면 머릿속에 맴도는 인생 맛집이 되어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이 층 적산가옥으로, 들어서면 좁은 통로마다 방이 칸칸이 붙어 있고 복도 중간쯤 나무로 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시간 여행자가 된듯한 공간이 펼쳐진다. 다다미 바닥에 테이블 몇 개가 줄 맞춰 앉아 있고 개방된 창문으로 장승포항이 내다보이는 곳.
육이오 전쟁 초기 흥남 부두는 남한으로 피난 가기 위해 모인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의 할머니도 그곳에서 배를 탈 수 있었다. 정원 육십 명인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일만사천 명이 탑승했고 배 안에서 태어난 다섯 아이까지 포함하여 다친 사람 하나 없이 크리스마스날 거제 장승포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그때 배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김치1부터 김치5까지 애칭이 붙여졌고 지금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단한 피난살이에 냉면집을 시작했고 그것이 삼대째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유혹적인 냉면의 맛은 삼월부터 시월까지만 맛볼 수가 있다. 왜 그러시냐 여쭤보았더니 일제시대 지어진 집이라 난방이 되지 않아 넉 달 동안 문을 닫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월이 시작되면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몇 번이나 찾아가고는 마지막 주 무렵 작은 선물 하나 드리며 올 한 해도 감사히 잘 먹었다 인사드리고 아쉬운 걸음으로 나서면 주섬주섬 검은 봉지에다 서울 가는 자식 챙겨 주시는 것처럼 시원한 육수 몇 통과 가오리회 무침을 쥐어 주며 내년에 보자고 말씀해 주신다. 유난히 고등학생 아들과 같이 가면 웃음에 웃음을 더해 시원한 편육 몇 개 더 얹어 아들 앞에 내어 주시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은 후 멋쩍게 인사하는 아들에게 한 번 더 웃어 주시는 사장님. 어떤 까닭으로 셋째 아들인 그분이 가업을 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의 선한 모습과 냉면 위에 얹힌 계란 한 알을 보며 칠십 년 전 뿌려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생각해 본다.
얼른 삼월이 와서 시원하고 알싸한 냉면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