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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Sep 09. 2020

반짝이는 다리가 부럽지 않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


한강 다리를 매일 건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하철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수십 번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하철 창가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인생 고달프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혹독할 필요가 있을까.' 매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 수심 가득한 내 얼굴이 잠깐 보이지 않는 때가 있다.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다. 창밖을 보면 같은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과 한강, 그리고 한남동 주택들. 너무나도 서울스러운 풍경은 혼자 사는 나를 더 외롭게 했다. 그냥 난 그곳엔 그 풍경만 있는 줄 알았다.


어쩌다 한번 매일 가던 그 다리가 아닌 그 옆 다른 한강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오른쪽 창문을 보는데 너무나 반짝이는 예쁜 다리가 있었다. '저기는 되게 반짝이는구나'. 그리고 놀랐다. 그 다리가 내가 매일 건너던 다리였다. 너무나 우습게도 그때 난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숨 가득한 고통 같은 시간을 지나는  거리가 어딘가에서 바라볼 때는 반짝이는 곳일  있겠구나.’ 그리고  당시의 일과 겹쳐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지만 그곳이 나에겐 고통이었다. 하지만 같은 업계로 가고 싶어 하던 소수의 친구들이 그 모습을 질투했던 적이 있다. '그냥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건데 고작 몇 개월 먼저 취업을 했다고 질투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과연 이런 친구들과 오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때의 일은 친구 관계에 대한 내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중요한 일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게 떠올랐다. 입학, 취업, 결혼 등 사회가 요구하는 시기가 있다 한들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다.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아끼면서 걸어가야 한다. 취업을 해야 하는 '시간'을 강요하는 사회 때문에 친구들도 예민해졌던 거고 반짝이는 다리만 보였을 거다. 그 안은 잿빛 가득한 세상이란 걸 알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같은 시간에 좋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질투하지 말자. 부러워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나를 그들의 시간에 빗대어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품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건방졌다는 듯이 슬럼프를 크게 겪었다. 노예의 후유증인지 오른쪽 어깨는 망가졌고 치료하면서 나를 놓았고 살은 급격히 쪘다. 치유라는 이유로 1년 반 정도 나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다짐과 다르게 그 같은 '시간' 속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얄미워지기도 했다. SNS도 내가 닿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만 구경했다. 아는 지인의 일상이 더 괴로웠달까. 그럼에도 계속 되새겼다. 지금은 멈춰졌지만 결국 나도 다시 걷는 시간이 올 거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보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약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온다. 물론 그 시간 또한 고통과 슬픔 반, 희망과 다짐의 반을 반복하면서 괴롭게 보내면 온다. 누군가를 만나면 말했다. "결국 시간이 약인 거 같아. 나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그리고 용기를 내서 취업이 아닌 새로운 활동을 했다. 어느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한 동생의 말에 "나도 2-3 뒤에 독일로 대학원 가고 싶어.  거야!"  말을 들은  옆에 있던 동갑인 사람이 물었다. "근데 솔직히 저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나이가 걱정되지 않아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대답했다. "맞아요. 나이가 걱정되기도 해요. 근데 이거 신청했을 때도  마음이었는데... 이런 말이 뭔가 부끄럽지만 60-70 되어서 지금을 돌아보면 2, 3년으로 고민했던  자신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질  같아요."


세뇌이기도 하다. 망설임이 많은 나를 채찍질할  있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나  때마다 고민이 많아진다. 그래서 상상한다. 흰머리가 수북한 노인이 되었을   모습을.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몰라도. 그때가 되면 살아온 날을 돌아볼 일이  많아질  같다. 옛일을 떠올렸을   고민 많은 내가  고민만 하다 무언가를 못했다는  떠오른다면  사실만으로 후회할  같았다.




오늘 친구와 톡을 했다. 소소한 대화로 소소하게 행복하다 각자 노래를 추천했다. 역시 난 그 노래를 추천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고 사람들은 자꾸 서둘러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잠깐 멈춰도 된다.


친구가 말했다. "이제  서른이라고 어떻게 하라고 주변에서  얼마나 말할까."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데 아무리 달라진 세상이라 해도 여전히 사회는 각자 살아가는 시간은 무시하고 나이에,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 난 대답했다. "의미 부여... 필요 없는데!  인생은 계속 흐르고 있고 나는 계속  시간으로 가는 건데!"


얼마 전에 에일리 인스타에 올라온 글이라고 본 게 떠올라서 친구에게 공유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한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대에 있는 것이고 나도 나만의 시간대에 있는 거다. 뒤처지지도 이르지도 않은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다.

(https://www.instagram.com/p/BqjsijRHHxM/?utm_source=ig_web_copy_link)


이런 다짐의 시간을 많이 보내서일까. 이제는 정말 내 인생 속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결정의 순간마다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마구 흔들리지 않는다. 중심축이 생겼다. 다른 사람 또한 자신의 시간에서 살고 있는 거고. 아무리 부러운 모습이라 해도.


그건 그저 오래전 내가 본 반짝이는 다리일 수 있다고. 나는 나와 나의 길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Sole - Slow



#수요일의f #숲 #숲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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