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숲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예 Aug 19. 2020

기차잡담: 기차에서 생긴 일

수요일의 f; 숲 - 네 번째


기차를 좋아한다. 스무 살이 되고 혼자서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기차를 좋아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로망이 묻어나는 공간이어서. 수원과 서울의 도심 속이어도 기차에선 자연을 볼 수 있어서. 비가 오면 창문에 빗방울이 맺혀서 좋고. 눈이 오면 노래를 들을 때 하얀 세상에서 감성이 피어서 좋다.


그리고 기차는 답답하지 않아서.


난 멀미가 꽤 심한 편이다. 자동차,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조금 울렁거린다. 항상 수원과 서울을 오고 가는 일이 많았다. 빨간 버스를 타고 도착지에 내리면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사이다를 사먹었다.


그런데 기차는 멀미가 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무게와 내부, 바깥 풍경이 잘 보여서인지 멀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들이 모여 '기차'라고 말하면 그냥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적었다. 40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 다양한 사람들을 봤다. 출퇴근을 기차로 하던 때 기차잡담이라는 메모 폴더를 만들고 무언가를 느낄 때, 감명 받은 때를 남겼다.



오해가 오래가지 않기를


기차를 타면 시끄러울 거 같은 사람이 보인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수다쟁이. 조용한 출퇴근길을 방해하는 그들의 수다가 달갑지만은 않다. 이런 버릇이 생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훑어본다. '아 시끄러울 거 같은 느낌인데.' 이어폰을 귀에 더 깊게 꽂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신나 보이는 표정, 주머니가 많은 그들의 복장, 여행의 설렘이 묻어나는 몸짓.


'분명해, 시끄러울 거야.'


그들이 앉는다. 기차는 출발한다. '왜 조용하지?' 하는 순간. 열정적인 손짓을 봤다. 들리지는 않지만 그들은 행복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끄러워졌다. 오해했다. 소리가 클 거라고.


부끄러운 마음을 메모장에 적는다.

<오해가 오래가지 않기를>



생각지 못한 박력에 설렐 때.


설레는 건 기대하지 않을 때, 뜬금없을 때 온다. 문을 잡아 줄 때 많이들 설레한다. 기차에선 비슷하지만 다른 특별한 설렘이 있다.


항상 용산역, 서울역 종점에 내리는 나는 기차가 설 때쯤 일어나 줄을 선다. 미리 앞에 서있는 사람들과 내 사이를 자동문이 막으려 할 때 푸쉬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고 내릴 준비를 했다.


아직 완전히 기차가 멈추지 않아서 다시 한번 자동문이 닫혔다. 그때, 내 머리 위로 긴 팔이 지나갔다. 그는 오른쪽 위에 있는 자동문 잠금장치를 누른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모른다.


웃기지만 설렜다.


'자동문 잠금장치 때문에 설레는 건 기차에서만 있는 일일거야.'



그들의 사랑이 밉지 않을 때.


나는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비행기를 탈 때도 자동차를 탈 때도 창가는 내 자리다.


그날도 어김없이 휴대폰 한 번, 좌석 번호 한 번씩 번갈아 보면서 창가 자리를 찾아갔다.


누군가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내가 온 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창밖을 바라봤다. 막 손을 흔들고 뽀뽀를 날리고 난리가 났다. 바깥에 있는 애인에게 열심히 애정행각을 하다 인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라 했다.


그날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거기에 앉으라고 했다.


주말부부인 우리 엄마 아빠는 기차역에서 자주 헤어졌다. 어린 커플이지만 우리 엄마 아빠의 애틋함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또 적는다.

<그들의 사랑이 밉지 않을 때>



모바일은 나이를 먹지 않잖아요.


만원 기차는 버스, 지하철과는 다른 풍경이다. 미리 휴대폰으로 표를 산 젊은이들이 주로 앉아있고 머리가 희게 선 노인들이 서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사람이 많은 날은 그런 경우가 많았다.


기차 자리는 양보하는 게 아닌데...라고 하며 일어나지는 않는다. 내 앞에 안 서길 바라며 적는다.


'모바일은 계속 젊어진다. 나이를 먹는 건 인간이다.'

나이를 먹지 않는 모바일은, 나이 들어 하루하루가 다른 세상인 그들을 이해할까.


젊어지는 모바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은 불편함을 겪는다. 적응은 인간의 몫이다. 서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어찌하면 좋을까.



쉽게 찾아오지 않아 감격스러울 때


쉽게 오지 않는 순간.


집으로 가는 길,

한강 위 다리를 지나는데

붉고 푸른 노을이 진다.


때마침 시야를 방해하는 교각 없이

드넓은 강과 하늘이 내 눈앞에 있을 때

감격이 몰려온다.




#수요일의f #숲 #숲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