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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Oct 07. 2020

나한테 패스를 안 줘서 속상해

근데 패스 줄 위치에 있어야 돼

인생 첫 골을 넣었다! 너무 기쁘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 타자는 홈런 될 거 같은 공이 오면 천천히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데 그런 것처럼 세상이 잠시 멈춰진 거 같았다.

사실은 세상이 멈춰진 게 아니라 내가 천천히 넣은 것이 맞다. :D

팀원에게 패스를 받고 한번 공을 잡은 후, 자세를 고치고 골대를 향해 쐈다! 그리고 골이 들어갔다!

솔직히 골키퍼인 코치님이 봐주셨다. 그런데? 자존심이 전혀 상하지 않는다. 기쁘기만 할 뿐! 소리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경기가 끝났다. 오늘도 행복한 풋살이었다며 밥을 먹으러 갔다.

골을 넣은 건 금세 잊었다. 사실 경기 내내 느낀 건 다른 감정이었다.

내 실력은 깍두기다. 물론 그런 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바로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묘하게 나에게 오지 않는 공 때문에 조금은 속상했다.

밥을 먹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한테 패스를 안 줘서 좀 속상해."
옆에 있던 친구 남자친구가 웃었다.

친구는 말했다.
"근데, 패스를 줄 위치에 있어야 돼."

아하! 머리가 띵!

맞네. 왜 그 간단한 걸 몰랐지? 패스를 받고 싶으면 패스를 쉽게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지. 뛰다 보면 숨은 차고 말은 안 튀어나오니 Hey! Hey!도 못하잖아. 내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른 것도 아닌데 누가 내가 있는 줄 알고 잘 보내줄까.

난 그저 내가 슈팅을 못하니까 안 준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곳에 없었다. 패스 줄 사람이 바로 줄 수 있는 '그곳'에 내가 없었다.

한편으론 그곳에 없었다는 중요한 사실 속엔 내게 자신감이 없는 것이 컸음을 느꼈다. 너무나 중요한 타이밍에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 슈팅을 못하는 내가 골을 못 넣을 거 같았다. 자연스럽게 수비 쪽으로 가서 맨투맨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렇다. 뛰다가 또 느낀 건 '와 나 정말 힘들게 뛴다. 맨투맨만 하니 힘들지. 열심히 뛰기만 하는데.'

오! 정말 비효율적이야!

한참 있다 또 말했다.
"근데 나 뛰면서 느꼈는데. 나 정말 비효율적으로 뛰는 거 같아. 수비만 열심히 해."

친구는 또 답했다.
"수비는 축구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래."

아하! 두 번째 명언! 너 오늘 명언 대잔치다! 즐겁게 웃었다. 뼈저리게 느꼈다. 나 정말 풋살 잘하고 싶다! 그래 수비, 공격 다 해야지. 좁은 풋살장에서 자신 없다고 수비를 보고 있었다니 정말 바보였다.

자신 없음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회사 동료에게 따뜻하게 혼났다. 자신 있게 말하라고. 괜히 마음 약해져서 하고 싶은 말 못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해서 받아낼 거 받아내라고 했다.

함께 저녁을 먹을 때였다. 연봉 협상에 성공하고 싶다는 그분은 비슷한 얘기를 몇 번 했다. 본인은 마음에 들게 협상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자신 없던 난 만족하지 못하는 인상액으로 입사했다. 이 정도 사실만 서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분은 나에게 몇 번이나 코칭 해줬다.

사람들이 좋아서, 저번 회사보다 다닐만 해서, 코로나 시대에 성과가 안나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자신 없게 협상하지 말라고 했다. 얻어내고 싶고, 잘하고 싶고, 받아내고 싶다면!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맞다. 패스를 받아야 하는 내가 자신 없게 있다면 패스를 잘 줄 수 있을까? 기본기, 실력 키우기는 당연한 거고 그것만큼 중요한 건 자신감이야!

그래. 풋살을 잘하고 싶은 선수라면, 공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패스를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서점을 걷다 멈칫하게 했던 이 책이 생각난다.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어차피 필드에 있을 거라면 그 시간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수요일의f #숲 #숲쓰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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