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f; 숲
13살의 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그제서야 구체적으로 세어보았다. 서울, 수원, 부산, 대구, 수원. 6년 동안 5번의 이동을 거쳤다. 물론 초등학교도 5군데나 다녔다. "어 그래, 단예 인사해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쭈뼛쭈뼛하게 "아... 안녕, 나는 박단예라고 해."
6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매해 이런 퍼포먼스를 했다. 주목받는 잠깐의 불편함은 있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신기하게도 금방 익숙해지고 늘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물론 오래된 친구는 없었다.
필름이 지나가듯 그 시절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또래들이 생각난다. 그중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 6학년 때 만난 같은 반 여자애다. 짧은 머리를 꽁지가 빼꼼 나오게 항상 묶어 다녔고 옷은 늘 핑크색 반팔 티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여름엔 그 옷을 교복처럼 입고 봄, 가을엔 그 위에 점퍼를 둘렀던 거 같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향이 있다. 무언가를 태운 장소에서 나는 탄내. 그 냄새가 항상 났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피했다. 피하기만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피한다는 그 제스처를 강하게 뿜어냈다. 가끔은 모욕적인 말도 던졌다. 그 친구는 혼자였다. 나라고 다가갔을까. 아니다. 안타깝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물론 모욕적인 말도 제스처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모른 체했다. 정말 필요에 의해 가끔 이야기했고 길게 이야기하면 다른 애들도 나를 어떻게 할까 싶어 짧게 대화하고 말았다.
어느 날 짝꿍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티비 바로 앞 6명 모둠 자리에 그 친구랑 나, 나머지 남자 애들 4명 이렇게 앉았다. 여름쯤이었나. 솔직히 짝꿍이 되자 멈칫하긴 했다. 다른 것보다 그 심한 탄내를 가까이서 매일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티는 내고 싶진 않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숨은 살짝 참았다. 말을 걸었다. 13살의 내가, 그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건 나름의 큰 용기였다. 사람에게 사람이 말을 건네는 게 망설여지고 겁나는 거, 이런 마음 자체는 비겁하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교탁 앞에 서서 나를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의미로 떨리는 일이었다. 다른 애들이 보면 어떡하지라는 마음과 누구를 따돌리는 사람은 되지 말자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래도 매일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조잘조잘 떠들고 하하 호호 웃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다른 애들이 장난치면 그 애도 같이 놀 수 있게 말하곤 했다.
다른 짝꿍으로 바뀌고 사실 처음으로 돌아갔다. 필요에 의해 가끔 말하던 때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모든 반 친구들이 줄을 서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아이 앞에 있던 한 친구가 너무나도 티를 내며 그 친구를 피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선생님이 생생히 목격했다.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별 얘기 없던 선생님이 모욕감을 잔뜩 주며 피한 그 친구를, 그 장면을 보자 화를 내셨다. 크게 소리치셨다. 왜 걔를 피하냐고,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우리 반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선생님은 속수무책으로 아니 자신을 피하는 그 환경이 너무나 익숙해진 채로 살던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야기 나눴다. 그 친구는 집에 갔고 남은 반 애들을 데리고 이야기하셨다. 솔직히 어떤 얘기를 했는지 2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근데 이 얘기만 기억난다. "짝이었던 애 한 명만 자기한테 말 걸고 잘해줬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같은 모둠이었던 다른 애가 그 아이가 나라고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
요즘 매일 뉴스가 뜬다. 검색어에는 유명인 이름이 나오고. 클릭해보면 대부분이 그들의 과거 얘기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왜 저렇게 살았냐며 사람들과 욕한다. 점심 때였다. 어떤 가수가 학교 폭력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주제가 나왔다. 누군가 각자에게 어떤 학생이었냐며 물었다. 혹시 일진 아니었냐며 농담 삼아 말하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얌체 같이 나는 따돌림 당하는 친구 챙겨주는 애였다고 말해버렸다. 물론 장난식으로 말이다. 그러고 말을 바꿨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 나쁜 짓은 안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요 며칠 걔가 생각났다.
13살의 나는 그랬지, 11살의 나는 누군가에게 따돌림받기도 했어. 사투리 안 쓴다고 은근 슬쩍 따돌릴 때, 오해받는 일은 왜 또 생기는지 너무 속상해서 학원이 끝난 그 늦은 저녁에 어린애가 집에 안 들어가고 그 앞에서 펑펑 울었다. 14살의 나는 무서운 일진 애들이 같은 반 남자애를 막 때리는데 아무것도 못했다. 10살의 나는 선생님이, 아니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 어린 애를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던지듯이 때렸는데 온몸이 굳었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그 사람 말을 따라버렸어. 18살의 나는 어떤 애를 보고 특이한 애라고 친구들이 뒤에서 따라 하며 놀리는데 같이 웃고 말았다.
그때 걔는 어땠을까. 누군가에게 맞던 애, 잊지 못할 폭력으로 서른에도 충격을 갖고 있을 애, 나를 따돌렸던 애, 놀림을 받던 애. 후회한다. 미워한다. 미안하다.
각자의 필름 속 지울 수 없는 씬으로 남아있을 그 장면, 그 씬의 주인공이었던 피해 받았던 애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넘쳐나는 기사와 피해 받은 날들을 호소하고 고백하는 사람들. 모든 이야기가 가짜였으면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일이라 만일 사실이라면 가해자들이 꼭 벌받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어렸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OO 살의 나'를 적어보라는 숲 쓰기 주제에 나는 많은 폭력의 장면 속, 선한 사람이었다고 믿는 13살의 나를 떠올렸다. 어이없게도 그때 나는 이런 행동을 했다며 2-3번 어떤 사람들에게 말했던 거 같다. 다른 장면 속 선하지 못했던 나는 잊어버리고 말이다.
나의 13살은 그랬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 친구의 13살은 어땠을까. 그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