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
우리의 대화방 공지에는 이런 하트들이 있다. 파랑, 흰색, 빨강, 검정. 그 아래는 검정, 빨강, 흰색, 파랑.
이것이 무슨 의미냐, 각자의 팬들이라면 눈치챘을 암호다. 그 대화방에는 두 명의 K리그 팀 팬이 있다. 한 명은 수원삼성, 다른 한 명은 FC서울이다.
축구팀 팬들은 팀을 상징하는 색을 곳곳에 남긴다. 특히 소셜 미디어 내에서 쓰인다. 프로필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호처럼 쓰거나 팀과 관련한 게시글에 댓글로 남긴다. 수원삼성의 컬러는 파랑, 흰색, 빨강의 청백적이다. FC서울은 검정, 빨강 곧 검빨로 불리는 시그니처 컬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이 하트들이 대화방 공지에 함께 공존하느냐.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방식이다.
꽤 오랫동안 수원삼성과 FC서울은 라이벌이었다. 이름하여 <슈퍼매치>. 말 그대로 매치 중 최고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들은 단순한 경쟁 상대가 아닌 K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었다. K리그의 인기가 높지 않아도 우리나라 스포츠 라이벌하면 단연 손에 꼽는 둘이었다. 그래, 4만 명, 5만 명의 관중이 기본인 때가 있었지. 심지어 아주 오래전엔 FIFA에서 선정한 '세계 7대 매치'로 뽑히며 <슈퍼매치>의 명성은 오래갔다. 그땐 그랬다...
그런 라이벌을 각자 사랑하는 우리는, 친한 친구다. 우리의 대화에선 무언의 약속으로 정해진 선이 있다. 축구판을 들썩이는 사건 사고가 그 팀에서 터졌다 해도 상대 팀은 먼저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일화로 인해 상처받을 팬의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는 속칭 서로 까면서 친분을 유지하기도 한다지만 우린 상대가 먼저 털어놓지 않는다면 최대한 모른 체 해준다. 일명, '까도 내가 깐다'의 법칙. 예를 들어, 내 동생은 내가 놀릴 수 있지만, 밖에서 누군가가 놀려 동생을 힘들게 했다면 눈이 뒤집히는 가족의 관계처럼 말이다.
우린 축구를 가장 사랑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처음 만났다. 축구산업아카데미라는 K리그 연맹이 주최해 산업 종사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이름에 걸맞게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K리그 팀 팬들부터 해외 축구리그 팬, 심지어는 타 스포츠 팬도 모여 있다. 자기소개를 할 땐 어느 팀 팬인지를 꼭 덧붙이는 건 이곳에선 당연한 문화였다.
처음 서울 팬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아.. 서울팬이세요?.."라며 친해지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흠칫했다. 물론 그쪽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누구와도 잘 지내고 성격 좋은 그 친구와 잘 통했다. 점점 더 가까워졌다. 축구랑 관련된 재미난 활동이 생기면 먼저 떠올리는 친구가 됐다. 같이 다른 팀 축구를 보고 풋살을 배우러 다니고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며 라이벌 팬이라는 존재감은 흐릿해졌다. 그저 친한 친구가 됐다.
공생하는 또 다른 방법, 서로의 굿즈를 챙긴다. 최근 받았던 선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걸 받았다. 몇 년 전부터 K리그 선수들 모습이 담긴 파니니 카드가 출시 됐다. 유희왕 카드처럼 누가 나올지 모르는 랜덤 뽑기다. 하나하나 야금야금 사다 보면 금세 돈을 탕진할 수 있다. 하지만 호주로 떠난 해에 그 카드가 등장해 한 명도 모으지 못했다. 몇몇 친구들에게 부탁했지만 솔드아웃으로 실패해 너무 아쉬운 참이었다.
그러다 귀국 후 생일을 앞둔 때 친구를 만났다. 갑작스레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재미난 눈빛을 보내면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비닐 지퍼백이 보였고 그 안에는 반짝이는 사각형 종이들이 보였다. 설마...라고 생각한 순간 깨달았다. 그것은 카드들이었다. 바로 수원 선수들만 모아둔 것이었다. 겉에는 귀여운 포스트잇에 '단예 언니꺼'라고 적혀 있었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 종종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내게, 아주 진실하고 행복한 반응이 터졌다.
남들이 보기엔 다 큰 어른들이 뭐 저런 종이 쪼가리를 주고받으며 저렇게 감동한 표정을 짓는지 의아할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내겐 메시지, 정성, 귀여움 그 모든 것이 담긴 최고의 선물이었다. 너무 작은 것이라며 진짜는 다음에 주겠다는 친구에게 두 배 속 빠르게 "무슨 소리야! 이거면 충분해. 아니 너무 넘쳐. 완전 최고의 선물이야!"라고 말했다. 사실 통이 큰 그 친구는 한 박스를 사서 거기에 나온 것들을 따로 빼둔 것이었다.
그렇달까. '수원=나'로 여기며 카드를 모아둔 것, 마당발인 그녀의 주위에 여러 수원 팬들이 있음에도 내게 준 것 등. 감성인에겐 여러 의미부여를 통해 얻은 큰 감동이었다.
각자에겐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다. 그 팀 또는 서포터즈를 뜻하는 별칭이다. 개랑과 북패. 의미는 설명이 길어질 수 있으니 하지 않겠다. 궁금하다면 찾아보길 바란다.
얼마 전, 응원가 얘기를 나눴다. 가끔 오늘 경기는 어땠는지 각자의 팀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러다 서울 팀에서 이겼을 때 부르는 노래를 언급했다. 사실 잘 알지 못해 "나 처음 듣는데? 저기 가사에 수원이 들어갔나?" 했더니 친구는 웃으며 "우린 서로를 팀 이름으로 안 부르잖아."
맞네. 서로는 서로를 다르게 부른다. 수원은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할 때, 서울은 우리의 먹잇감이라고 할 때. "우리 사이에 서울과 수원이라 부르면 정이 없지!"라며 역사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얘기로 실소를 했다.
그래서 하트를 서로에게 나눴다. 각 팀 팬들이 보면 (다소 오버해) 배신자라 여길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받을 때, 칭찬해주고 싶을 때, 힘내라고 할 때 등. 서로에게 기운을 줘야 할 때 "풉"하고 웃을 수 있게 던지는 유머처럼 저 하트를 보내준다. 나는 그 팀을, 걔는 우리 팀을. 그러다 마치 종교대통합 같은, 화합의 상징의 공지사항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친구와의 우정은 우정이고 라이벌은 라이벌이다. 가장 기쁜 승리는 역시 슈퍼매치 승리다. 두 팀 모두 한 마음일 것이다. 한 때 우승권이던 두 팀 모두가 하위권을 맴돌아서 '슬퍼매치'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얻었을 때도. 괜히 선수들의 승부욕과 열정이 부족해 보이던 해에도. 슈퍼매치의 휘슬이 불리면 선수, 코치진, 팬들 모두가 여전히 격렬해지고 격정적으로 흥분해 승리를 갈망한다.
각자의 사정이 달라지고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친구가 이 부분은 읽지 않았음 한다. 반대였으면 좋았을 런만, 그들은 위로 우리는 아래로 멀어졌다. 만나지도 못하게 아예 강을 건너버렸다. 그래도 가끔 이런 게 보인다. "얼른 올라와서 우리랑 다시 붙자." 또는 "수원이 없으니까 심심하다." 등.
친구도 말했다. 우리는 수원을 기다린다고. 그래, 가긴 갈 거야. 빠르면 좋겠어. 그런데 아직 고칠 게 많이 남은 것 같아. 조금 걸려도 결국은 갈 거야. 화려하게 해치워 버릴, 그때를 기다릴 거야. 우리 꼭 다시 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