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예 Oct 13. 2024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사랑 잔치

그곳에만 가면 느끼해지는 사람들

덕후는 아닌 척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저들과는 달라 같은. 마치 티라미수가 되기 전, 커피를 핑거쿠키에 부었을 뿐 충분히 적셔지진 않고 있을 때처럼. 비유가 먹을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진정한 덕후로 스며들기 직전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완벽한 티라미수가 되었다. 하여튼 그 건방진 시절에 한 걸음 떨어진 시선으로 의문인 것들을 주위에 물었다.


첫 번째, 왜 사랑한 다음에 좋아한다 말하는 거야? 왜 감정의 흐름이 저렇게 흘러가는 거야?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 응원가 넘버원은 <나의 사랑 나의 수원>이다. 노래의 후렴은 이렇다.


오오오오 사랑한다
나의사랑 나의수원
오오오오 좋아한다
오직 너만을 사랑해

곡의 시작부터 대뜸 사랑한다! 외친다. 곧 이어선 좋아한다고 한다. 좋아하다가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 거야? 기승전결이 이상하다며 친구에게 가사의 의도가 정말 궁금하다고 잊을만하면 묻곤 했다.


두 번째,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 가족이 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수도 아닌데 말이야. 각자의 삶이 있는데 왜 이렇게 과몰입하지. 정말 덕후들이란. (못 말려). 마치 누가 지금의 나를 보고 물을 것만 같은 대사를 속으로 뱉었다. 우리 팀 선수가 상대에 걸려 넘어진다. 곧바로 약속한 듯 괴성과 욕설이 막 나온다. 그걸 보며 저렇게 말해버렸다.


'과연 자신의 가족에겐 오늘 이 자리에서 한 것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할까?'라는 염세적인 자세로 그들의 사랑을 의심했다. <사랑> 이게 이렇게 쉬운 단어였나. 고함 속 욕설이 들리다가도 사랑한다고 외친다. 안 세어봐도 족히 수십 번이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사랑 잔치를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와라.



'저 정도 덕후는 아닌' 자아로 살다 촉촉이 스며들었음을 완전히 인정했던 때가 있다. 우정은 친구가 잘 되었을 때, 사랑은 상대가 힘들 때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된다고들 한다. "너무 힘드니까 더 사랑해져" 같이 아래로 더 아래로 땅굴로 내려가려는 이 팀에 더 빠졌다. 평강공주 콤플렉스인지 구해줄 수 없는데 구해주고 싶었다.

점점 경기장 찾는 횟수가 경기가 열리는 수와 비례해지려던 때. 그러다 어떤 아저씨의 느끼한(?) 말에 깨달았다.


그날도 졌다. 곧 지하 세계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은 야유를 하고 OOO 나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W석에 앉아 허망하게 모든 장면을 담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뒤에서 아저씨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나, 이 팀 25년 좋아했다!
이 사랑에 후회는 없다!


모두가 NO라고 말할 때,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두 분위기에 휩쓸려 우-를 부를 때, 사랑을 울부짖는 저 아저씨. 처음 저 멘트를 듣자마자는 "헉." 했다.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저런 대사를 육성으로 뱉지. 순간 우리가 '오글거리다'로 퉁치는 다양한 감정이 훅 다가와 꿈틀 했다. 뭉클하다, 느끼하다, 감동이다, 부끄럽다, 너무 진지하다 등. 감히 오글거림에 다 끼워 넣을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나 또한 "헉, 오글 거ㄹ..."라고 할 뻔했다.


그건 오글거리는 게 아니었다. 그 장면 속 세상과 너무나 반대되는 감정을 글자가 아닌 소리로 들은 놀라움, 처음 본 아저씨도 귀엽게 느끼게 하는 그의 진심에 뭉클했던 거였다. 아주 살짝 울컥했다. 메마른 눈에 눈시울이 30% 정도 찬 정도? 그렇지, 저 사람의 25년. 누군가의 3년, 10년. 짧거나 길거나 그 안에 함께한 순간들이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못한다고, 좀 많이 못한다고. 강등된다고 그 시간을 부정할 것인가.


후회 없지! 이러나저러나 내가 선택한 팀이야. 무엇보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그때의 내가 있고 나의 역사가 있는데. 그 자체가 소중한데 말이다.


그날 받아들였다. '나 덕후 맞아. 인정해.'



올해는 여러 뉴비들을 경기장에 데려왔다. 덕후 스토리를 본 몇몇 지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2부로 떨어졌는데도 저렇게 열심히 간단 말이야? 더 궁금해했다. 어느 날은 대학교 동기인 두 명을 초대했다. 가이드처럼 경기장, 경기, 선수들을 소개하고 가끔은 재미난 일화나 역사를 설명했다. 경기는 대승으로 끝났다. 하나둘 걸어 나오는 코치진과 스태프들을 보다 친구들에게 당시 코치였던 구)최애 선수를 소개했다.


"어, 저 사람이 푸른 늑대야. 내가 오래 좋아했던 선수였어."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친구들은 경악했다. "푸른 늑대...? 사람한테 왜 그래?" 하면서 폭소했다. 아니, 왜 이상하지? 푸른 늑대한테 푸른 늑대라고 했을 뿐인데?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친구들은 더 재밌어하며 놀렸다. 푸른 늑대인 이유를 설명하다 더 이상해졌다. 아직 뉴비에게 그런 건 딥하다며 말렸다. 그러곤 날 오롯이 덕후로 인정해 줬다.  


‘어머, 나 완벽하게 스며들었어. 많이 느끼해졌어.’라며 애정에 대한 부정은 온전히 사라진 체, 뿌듯하려던 그즈음 배경음이 깔렸다.


오오오오 사랑한다~ 나의 사랑 나의 수원. 기승전결에 대해 의심을 품던 때와 다르게 곧이어 "오오오오 좋아한다~"를 따라 부른다.


이젠, 사랑하니까 당연히 좋아하는 거고 좋아하니까 사랑해지는 거야. 그냥 그런 거야! 논리가 어딨어.


터프한 사랑 잔치에 동화된 또 한 명의 느끼한 사람이 나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