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마들렌, 침대정리하기

by 드아니

일어나서 침대 정리하기

일어난 뒤에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침대를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것이다. 새로운 침대를 살 수 없는 나는 지금 있는 침대를 최대한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불과 온수 메트가 함께 썼을 때의 적정온도를 알아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보통은 비슷한 온도에서 잠들지만, 잠든 상태에서도 보온이 되기 때문에 일어나서 전원을 끄고 싶은데 내 온수 메트엔 그런 기능은 없다.

내가 가진 이불은 하얀데 하얀 이불은 빨래를 자주 해줘야 한다. 하얘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시각적인 요소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다. 요즘 손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기사도 손으로 쓰고 있다. 뉴스의 이야기도 손으로 쓰고 있다. 내가 쓴 글을 보는 게 재밌다. 이슈 정리가 뒷전이 되면 안 되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신문 읽기로 부자가 된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한두 명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읽다 보면 부자가 된다. 책을 읽어서 부자가 된 사람은 더 많다. 반드시 책을 보다 보면 큰 부자가 된다. 신문과 책 읽기의 차이점은 뭘까? 신문이 주는 건 신선한 새벽이고, 책이 주는 건 출판의 과정과 저자의 노고이다. 둘 다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전유물이다.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책 쓰기와 신문 읽기는 하루 몇 시간이면 충분할까? 세상을 소화해 내는데 10만 시간이 걸린다면, 그다음을 예측할 수 있을까? 한국경제 TV를 보다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신문에서도 보조를 맞추기 어려워 실시간 방송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난과 부의 영역도 다시 달라진다. 내가 앞서 말한 부의 개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부흥이 온다. 부는 마음과 함께 따라와야 한다. 마음과 함께 부가 있어야 한다. 부부가 크게 성공한 사례는 성공으로 보기 어렵다. 성공보다 대단한 무언가라서 그런 것이다. 여태까지 나라는 사업가가 돈을 좇은 건 맞는데, 좇은 만큼 오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다.

어른과 큰 사람은 또 다르다. 법은 그래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견이 명확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새벽 기상이 무섭다. 겨울은 추워지고, 어둠은 길어진다. 그래도 나는 달리고 싶고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하겠지만 내 심장은 아직 겁을 먹는다. 아직 사회를 모르고 있다는 것과 똑같은 말처럼 들린다.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수없이 책이 알려줬지만 나는 책의 말보다 이제 그들의 말을 하나라도 제대로 믿고 성공하고 싶다.


하나만 알 수 있다면?

나는 모르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쪽이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탐구하는 시간은 내게 기쁨보다 끄덕임,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어떤 감정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지금 여기에서 다시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힘들 때도 나는 일기를 썼다. 내 일기는 점점 나의 일기가 아니라 그들의 자소서가 되는 기분이었나.

전혀 와닿지 않는 일기지만 예전처럼 나락으로 빠지지는 않았다. 돌이켜봤을 때, 내 글과 매일 쓴 것에 대한 가치는 그럼에도 뿌듯했다. 내 만족감을 주는 어떤 작품에 불과했다. 나는 두 가지의 문장을 앞과 뒤에 쓴다. 앞은 긍정이고, 뒤는 부정인 이중 의미라는 영역에 이중 문장이라는 국어적 해석까지 덧붙인다.

기자는 글을 쓰고 저자는 나를 알리려 하고 작가는 작품을 찍어낸다. 상품화가 된 것이다. 그런 글을 계속 읽고 있는 나는 마케터를 꿈꾼다. 꿈은 지속되고 성공은 다시 뒤로 간다. 나는 외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이 된다. 사람이고 싶다. Ai가 나를 꿈꿀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되고 싶다.

나는 나에 대한 애착을 글로 표현했다. 군자라면 천하를 얻으니 인내하라 하겠지만 고전철학이 재미가 없다며 등한시된다고 생각할 틈에 누군가는 강의를 열어 강좌로 만든다. '좌' 쪽에서 의자가 없어도 되니 들어주세요. 라고 했다. 나는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니까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과 상대는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 또 어지러운 말에 나는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

티스토리는 나에게 볼펜 같은 곳이다. 볼펜은 오래 남지만 예쁘게 나타나는 건 몇 없다. 일본의 제품에 대해 쓰려는 찰나에 요사이 일본과 관련된 기사는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가능한 영역에서 내가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아마도 내일쯤 관련 기사가, 아니 이미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한 번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은 하는 거니까 '해'를 붙이는 거야.

'해'는 태양이니까 만연히 빛을 쐴 수 있는 거야.

우리나라 언어에 '할' 보다 '해요'가 많이 있어?

오늘 예쁜 언니는 언어 왕의 챕터를 장식하고 싶어 졌다.

이따금 저는 높임말을 씁니다. 존대어를 사용합니다.

존재에 대해 무궁무진한 관심이 많다는 거야.

'존대합니다.'가 좋은지 '존재합니다'가 나은지.

마스크 쓰지 말라던데 이제?

뉴스에선 그럴 수 있다고 말했지 아직은 통과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시류에 또 한 순간에 휩쓸립니다.'

정답은 알고 있지만 확신할 수 있는 언어를 쓰지 못했습니다.

공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쉽사리 얘기한다.

휩쓸린다 하지마라.

트랜드를 안다 하지마라.

그 언어도 구삐짝짝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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