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희망공간의 고민을 토대로
새로운 지역 운동의 흐름을 찾아서
1층에는 카페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구수한 커피를 판다. 2층은 넓은 홀로 평상시에는 주류를 파는 음악 주점이다. 송년회나 신년회기간에는 지역의 여러 단체가 행사 장소로 이용한다. 3층에는 당구장 탁구장 노래방 댄스연습실이 있다. 4층에는 지역 여러 단체의 사무실과 세미나실이 있다. 아마도 우리 꿈꿈직한 가장 이상적인 희망공간? 혹은 민중의 집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민중의 집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유럽의 민중의 집을 희망하며 2008년 이후 마포 민중의 집을 시작으로 몇 개의 민중의 집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유럽과는 매우 달랐다. 유럽의 민중의 집들은 전국단위 노총과 어느 정도 세력화한 진보정당이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유럽 사회는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바로 토양과 분위기가 규모있는 전국 단위의 민중의 집을 세울수 있는 조건이었다. 한국의 민중의 집들이 겪고있는 환경은 정 반대이다. 종잣 돈과 조직을 지원해줄 노조나 단체도 없었기에 몇몇 뜻있는 시민들의 십시일반에 의존해야만 했다. 살인적인 부동산 폭등과 진보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는 사회적분위기도 극복해야했다 . 그런 이유로 애초에 민중의 집이 가졌던 목표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된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이태리의 민중의 집이 그렇듯 한국에서도 진보정당의 분열과 혼란이 악영향을 미쳤다 친노동당이거나 친 정의당 민중의 집이라고 분류 될수 있지만 과연 민중의 집에 참여하거나 민중의 집이 모으려고 하는 ‘민중’들의 정치 성향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큰 걸림돌을 감수해야한다.
이렇듯 민중의 집이 갖고 있는 쉽지않은 난제들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민중의 집에 주목해야 할까 . 바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는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이 힘을 갖는 공간이어야한다는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개의 마을 만들기와 민중의 집들에 차이가 있다. 마을 만들기가 마을의 환경을 바꾸고 몇몇 주민들의 지역적 과제를 해결하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민중의 집 운동은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되는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집에 희망공간이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지향과 관심 영역이다.
남동희망공간도 처음에 민중의 집이라는 이름을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단 한개의 진보정당을 근거로 한 사람들에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중’이라는 단어에대란 여러 고민들 속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남동희망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단어’에대한 고민은 우리가 뿌리내릴 지역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을 염두해둔 고민이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주민들은 민중이라는 단어로 규정되기보다는 시민으로 규정된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과 시민권을 확보한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민중은 일반적으로 빈과 극심한 착취와 억압을 받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꽤나 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남동희망공간’에서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민중’들에 대한 지향을 놓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운동은 지역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야하는 운동이다. “민중의 집”이 아니라 ‘희망공간’인 이유이다.
남동희망공간도 진보정당의 부침 속에서 여러가지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처음 희망공간을 같이 만들었던 동지들중 그런 저런 이유로 함께하지 않는 동지들도 꽤 있다. 지금 희망공간은 특정한 정당을 지향하지 않는다. 희망공간의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희망공간의 회원들 지역 주민들 또한 다양한 정치 지향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꿈꾸는 지향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라도 함께 할수 있다. 지금의 개방성을 더 확대시켜가야한다. 희망공간은 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광장이어야한다.
희망공간의 지난 시간을 돌아 볼때 잊어서는 안될 활동은 청소년 영화소모임 ‘꼴팸’을 지원한 일과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싸움에 힘을 보탠 일이다. 물론 선수촌 주민들과 했던 모텔촌반대투쟁도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청소년들의 쉼터이자 놀이터가 되고, 노동자들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는 희망공간은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지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희망공간을 처음 열면서 고민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민들에게 희망공간이 아떻게 보일지 항상 조심스럽고 발걸음을 내딪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주민들께 “ 남동희망공간”은 낯설지 않은 친근한 이름이 되었다. 그 동안의 여러 동지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최근에 한 사업들 하나하나 맨 처음과 비교해보니 엄청나게 발전한 우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희망공간을 만드는 주체가 운영위원이나 활동가 몇몇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희망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좀더 일상에 밀접히 다가갈수 있는 방법들과 방식들을 상상해야한다. 우리의 현재 체계나 사업들도 변화된 상황들에 맞춰 평가해보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해봐야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희망의 근거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