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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선 daniel Sep 30. 2023

마을에서의 세상을 꿈꾼 5년.

공간은 어떻게 생겨났나.

△문맹 퇴치교육 △스포츠 활동 △직업 훈련 등을 실시하며 이곳을 복합적 공간으로 발전시켰다. 민중의 집의 이와 같은 다양한 움직임은 당시 자본주의 흐름에서 소외된 일반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이는 진보적 정치 활동의 뒷받침이 됐다.



출처 : 성대신문(http://www.skkuw.com)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남동희망공간'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다.  정식 줄임명은 '남동희망공간'이지만 줄여서 '희망공간'이라고도 하고

'남희공'이라고도 한다. 핵심어는 희망공간이겠지만, 희망공간의 거대한 포부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이겠다.  어떻게 우리가 ㅇㅇ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떡하니 이름 앞에 붙이게 됐는지,

상근을 시작하고 공식적인 모임에서 나와 단체를 소개할 때면 언제나,

 

'남동희망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ㅇㅇㅇ입니다.  남동희망공간은 그냥 희망공간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남동희망공간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했다.


희망공간을 알았던 사람들도 가끔은 "희망공간" 앞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함께 사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그리고 함께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마을 단체라면 마을을 만들거나, 동네를 만드는데 희망공간은 마을을 만들지 않는다. '세상'을 만든다. 다른 마을 단체들, 공동체들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이런 거창한 꿈은 가진 희망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남동희망공간의 고민의 시작은 "민중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에야 남동희망공간과 '민중의 집'을 떠올리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우리는 정경섭의 '민중의 집'을 보면서 마을 공동체를 그리고 '민중의 집'의 의미를 담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민중의 집'은 영어로는 "People's House"라고 하는 데, 이탈리아, 영국, 독일, 벨기에, 스웨덴 등 유럽 곳곳에 잇는 노동자들의 지역 공동체이다.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노동자를 기계 부품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맞서 노동자들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민중의 집의 시작이었다.  민중의 집에서 노동자들은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힘든 공장일을 마치고 지친 육신과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공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노동자들과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공간이 바로 민중의 집이었다. 민중의 집에서는 다양한 문화활동, 문맹퇴치교육 여러 가지 정치활동 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들만의 공동체정신이 구현되는 장소가 바로 민중의 집이었다. 민중의 집은 유럽 곳곳에 자발적으로 생겨났고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민중의 집이 진보적인 정치사상만을 대표하는 곳은 아니다. 그보다는 민중의 집은 '일반 대중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곳'이며,  '지나친 소비와 경쟁위주의 삶을 지양하며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성대신문 2012.10.15)



정경섭저 민중의 집 (레디앙 2012.8.8)

 우리는 정경섭의 민중의 집을 함께 학습하면서 우리가 만들 단체의 모습을 꿈꾸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마을 공동체의 모델로 '민중의 집'을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 단체의 이름을 '민중의 집'으로 하려고 했었다. 한국에 있는 다른 여러 '민중의 집'과 같은 고민이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시점이 이상함을 깨닫게 됨, 희망공간 창립총회는 2011년 4월 13일이고 준비는 2010년부터 해왔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유진수 대표와 워크숍도 진행했었는데 민중의 집에 대해서 학습한 것은 그 이후.. 그러니까. 명칭을 고민할 때는 민중의 집이 없었다는 이야기인 듯.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


--  기억의 오류


희망공간을 만들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민중의 집' 저자인 정경섭씨를 강사로 초빙히 민중의 집에 대한 강의를 들었었던 것같다. 혹은 그 전 희망공간을 구상할 때 들었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확인해 보니, 처음에 희망공간을 구상할 때, 민중의 집이라는 이름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기록들이 생각보다 빈약하고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도 흐릿하거나,  뒤죽박죽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민중의 집' 모델은 중요한 지침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 기억의 정정


 기억을 정정하기 위해 '남동희망공간'을 처음 구상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를 정리해봐야 한다.  '남동희망공간'을 처음 구상한 사람들은 '진보신당' 남동구 위원회 당원들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지역에서 민주노동당 남동지역위원회 당원중 '진보신당' 창당에 함께 한 당원들이 '진보신당'을 키워내기 위해 모임을 가졌으며, 그 속에서 지역에 거점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그런데 단순히 정당 활동을 위한 공간은 성공하기 어렵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찾는 공간이어야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그러면서 정당 조직이 아닌 공간을 고민하면서 시작된 것이 '남동희망공간'이다.


-- 기억의 확인

 간만에 처음에 함께 고민했던 동료들과 만나게되어 나의 기억에대해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나의 기억이 맞았다. 우리는 민중의 집과 희망공간이라는 이름을 두고 고민했었다. 민중이라는 이름이 과연 지금 시대에 유효 한건지를 따져보았다. 우리들의 대다수는 지금은 '민중'은 맞지 않다. 라는 결론을 내었다. 하지만 만중의 집이 꿈꾼 세상, 그런 공동체는 우리가 지양해야할 공동체라는 데는 일치했었다.  시간의 착각은 우리가 고민하고 있었을 때, 정경섭의 책 '민중의 집'은 출판되지 않았지만 마포에, 구로에 민중의 집이 만들어져,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포 민중의 집'을 구상하고 설계했던, 한국에 '민중의 집'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소개한 정경섭이 특강을 해주었고, 구로에 '구로 민중의 집'을 연 강상구도 와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구로 민중의 집'을 소개해 주었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민중의 집'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민중의 집'은 우리가 가야할 기준점이 분명하였다.


- - 이어 지는 글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지만, 그 당안에서 활동하던 당원들, 당을 만들기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분당은 정파갈등이 원인이었다. 당은 당권을 거머쥐고 정당의 최소한의 원칙마저도 저버린 세력들만의 당이 되었고, 당을 만들었고 진보정당의 꿈을 키워온 다른 정파의 사람들은 결국 밀려나게 되었다.  당을 만들고 키우는 데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은 이제 빈몸으로 당을 나와 풍찬노숙을 겪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상실감과 분노와 함께 비장감이 모두의 공통의 정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정파의 폐해를 너무나 많이 겪어 온 터라, 정파갈등만 아니면 훨씬 더 건강한 당을 만들수 잇고 국민들이 지지도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과도 같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내부 분란으로 분당을 겪는 순간, 사람들은 그 분란의 내용보다는 결과에 더 집중했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민주노동당은 희망을 버린, 약속을 버린 정치집단에 불과했다. 더더군다나 분당을 하고 집을 튀쳐나온 한줌의 무리들에게 관심이 있을리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간과한 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기회란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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