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반복을 영원이라 한다(復命曰常)
致虛, 恒也. 守中, 篤也.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지허, 항야. 수중, 독야.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비움(虛)에 이를 수 있어야 영원하다.
중심(中)을 지킬 수 있어야 돈독하다.
만물이 모두 생성되는데,
나는 이것이 반복(復)되는 것을 본다.
저 물질들은 많고 많지만,
저마다 그 뿌리(根)로 복귀한다.
뿌리로 복귀하는 것은 고요해지는 것이다(歸根曰靜).
이것을 생명의 반복(復命)이라고 한다.
생명의 반복을 영원(常)이라고 한다.
영원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知常曰明).
영원을 모르면,
헛된 것을 쫓다가 흉해 진다.
영원을 알면 용서하게 된다.
용서하면 공평해진다.
공평해지면 왕(王)이 된다.
왕은 곧 하늘(天)이다.
하늘은 곧 도(道)다.
도는 오래간다.
몸이 죽어도 다하지 않는다.
�반복(復) :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도는 것을 표현한 글자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 탄생과 죽음은 직선적인 일회성 운동이 아니라, 계절이 반복하며 돌아가듯이 영원히 돌고 돈다.
�복귀왈정(歸根曰靜) : “뿌리로 복귀하는 것은 고요해지는 것(靜)이다.” 고요함(靜)은 ‘깨끗해지다’는 뜻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虛), 중심(中)을 지키는것이 고요함이다. 고요해지면 모든 존재의 뿌리인 무(無)와 하나된다.
�지상왈명(知常曰明) : “영원을 아는 것을 밝음(明)이라고 한다.” 밝을 명(明)자는 해와 달이 합쳐진 모양이다. 그래서 ‘빛’ 그 자체를 표현하는 글자다. 이 몸이 죽어도 우리 존재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면, 생명의 빛을 얻는다.
노자는 도덕경 16장에서 우주의 가장 본질적인 움직임을 ‘복(復)’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복(復)은 되돌아간다는 뜻이며, 이 말은 단순히 과거로 회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 반복, 회복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돌고 돌도 돌고 있습니다.
만물이 모두 생성되는데, 나는 이것이 반복(復)되는 것을 본다.
이 문장은 한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도(道)의 시선입니다. 자연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꽃이 피고 지고, 낙엽이 떨어지고 다시 새순이 돋듯, 생명은 소멸을 향해 달리는 직선이 아니라 순환하는 원(圓)의 운동 속에 있습니다. 탄생과 죽음, 낮과 밤,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되돌아옴’의 리듬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말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복귀(復歸)’입니다. 그것은 뿌리로 돌아가는 것(歸根),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道)’로 돌아가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길은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어집니다.
뿌리로 복귀하는 것은 고요함이다(歸根曰靜).
이것을 생명의 반복이라 한다(復命曰常).
영원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知常曰明).
고요함(靜)은 단순히 조용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요함은 존재의 중심을 지키는 상태, 곧 ‘무(無)’와 하나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다시 근원과 연결됩니다. 이 고요한 상태에서 생명은 반복되고, 우리는 존재의 본질이 ‘영원(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원함을 아는 것은 빛을 얻는 것입니다. ‘지상왈명(知常曰明:영원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이라는 문장은, 생명을 영원한 흐름으로 보는 자만이, 진정한 지혜(明)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식이야 말로 생과 사, 얻음과 잃음, 고통과 기쁨을 초월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이어 말합니다.
영원을 알면 용서하게 된다.
용서하면 공평해지고,
공평해지면 왕이 된다.
이 문장은 단순히 통치자의 철학이 아닙니다. ‘왕(王)’이란 도(道)를 깨달은 자를 상징합니다. 영원을 아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휘둘리지 않으며,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는 완벽하려 하지 않고, 충만하려 하지 않으며, 흐름에 따라 겸손하게 존재합니다. 우리의 인연은 영원으로부터 비롯되어, 영원히 이어집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답입니다.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스스로를 ‘비움(虛)’의 상태로 이끌 수 있으며, 중심(中)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이 자가 바로 진정한 왕, 주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도는 오래가며,
몸이 죽어도 다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는 몸이 아니라 의식입니다. 아기의 몸, 어린이의 몸, 청소년의 몸, 성인의 몸, 중년의 몸, 노인의 몸. 몸은 계속 변화하고 그 몸을 살아내는 의식은 영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계속 변화하고 그 계절을 살아내는 자연은 영원하듯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 의식이라는 것을 자각할때, 우리는 영원회귀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을 알면 용서하게 됩니다. 하루살이는 좀스럽지만, 영원살이는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영원을 알면 지금 이 순간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용서와 사랑을 선택하지 아니 할 수 없지요. 그것이 존재의 구원입니다.
“비움(虛)에 이를 수 있어야 영원하다.
중심(中)을 지킬 수 있어야 돈독하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cIRiDbRht3Q?si=5m3EVQlVATzK0f3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