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도충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담혜 사혹존. 오불지수지자, 상제지선.
도(道)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게 작용하여,
때로는 끝을 알 수 없다.
깊구나!
만물의 근본인 것 같다.
맑구나!
때로는 존재하는 것만 같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으나,
상제(象帝)보다 먼저 있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요한복음1:1).” 여기서 ‘말씀’은 ‘로고스’를 번역한 말입니다. 로고스란 진리, 이성, 원리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도(道)를 일컫습니다. 즉 태초에 도가 있었고, 그 도가 하나님인 것입니다.
상제(象帝)는 고대 중국인들이 믿었던 하늘과 우주의 주재자입니다. 만약 상제를 믿는 종교가 있다면, 이는 고대라는 시간과, 중국이라는 공간의 제약에 갇힌 종교이겠지요. 신은 특정 종교가 독점할 수 없습니다. 여러 종교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신이라는 보편적 진리의 단서가 숨어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항상 역사하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도라고 합니다.
신은 갇힌 마음이 아니라 깊고 맑은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이 깊고 맑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지요. 마음이 깊고 맑으면 신의 작용을 비추어 줍니다. 신의 작용을 비추는 마음 속 거울을 양심이라고 하지요. 양심이 곧 도덕이고, 도덕이 곧 신의 마음입니다. 도덕은 상제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이것이 도덕의 계보입니다. 도덕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입니다. 각자는 신의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계속 흘러 가는 것이 도를 따르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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