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추운 날씨가 계속됐다. 퍼붓듯 쏟아지던 눈은 멈췄지만 날카로운 바람에 눈가루가 빛을 내며 예쁘고도 아프게 흩날린다. 깊은 밤 자잘한 눈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프랑스 샤모니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졸업여행으로 떠난 프랑스 여행이었는데, 무척 추운 겨울이었다. 어차피 추운 거 프랑스의 겨울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샤모니로 향했다. 기차를 타는 순간이 얼마나 떨렸던지. 파리에서 두 번의 기차를 갈아타고 샤모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샤모니는 동계 올림픽이 처음 열린 곳인 만큼 매우 추웠다. 쌓인 눈에 파묻히는 캐리어는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산에는 꼭대기부터 그라데이션으로 눈이 쌓여있었다. 산의 높이는 경이로웠다. 곧 뾰족한 산의 끄트머리가 붉게 물들었다. 이른 시간에도 산이 너무 높은 탓에 해가 가려져 금세 밤이 되는 곳이었다.
쉬운 밤의 마을은 어딘가 쓸쓸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내 마음이 허한 탓일 수도 있겠다. 졸업을 앞두고 떠난 여행은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나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귀국 후에 혼돈과 불안이 뒤따를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지도 않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난 대책 없는 타입이다. 언제부터 인생에 벌어질 일들을 하나씩 정해놓고 살았단 말인가? 프랑스 여행도 남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끝물이었지만 코로나 덕에 인종차별이 만연할 때였고, 비행기도 기차도 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위기가 있었지만 잘 도착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를 현실과 타협해서 괜찮은 여행을 보냈다.
그 당시의 무대책 여성(나라고 일컫는다)은 샤모니에서 스위스 제네바를 가보고 싶어 버스를 타고 무작정 넘어갔다. 지도를 켜고 가고 싶은 곳을 바로 들어갔다. 생각지 못한 공간에 들어가며 현지인처럼 즐겁게 지냈다.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버스 시간표가 있었지만 왜인지 버스가 오지 않았고 심지어 몇 버스는 탑승 거부를 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언어 장벽의 한계 속에서 핸드폰까지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상황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버스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나라라고 해도, 프랑스와 스위스는 다른 나라였다. 손짓발짓을 이용해 바디 랭귀지로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노부부와 함께 택시를 탔다. 20분 정도 택시 안에서 아늑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제네바 공항에서 헤어졌다. 노부부는 우리가 샤모니로 갈 수 있는 버스를 안내해 줬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지. 밤늦게 샤모니에 도착한 나는 부랴부랴 짐을 쌌다. 심야버스를 타고 샤모니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영하 15도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사람이 없어 버스가 취소됐다는 이메일을 뒤늦게 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던 곳 바로 앞에 있는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의 가격이 얼마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떨며 버스를 기다렸던 탓일까. 체력의 한계가 왔다. 우연이었을까. 숙소의 이름은 ‘PLAN B’ 힘듦에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어둡고 추운 겨울의 마을도 아침은 온다. 새벽까지 열심히 찾아 기차를 예매하고 아침을 먹으러 한 가게에 들어갔다. 코코아와 크로와상을 먹는 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떻게든 결국 해낸 거다.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이 온다. 무언가를 하고있는 사람에게는 걱정도 불안도 없는 법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그저 걱정하는 데 온 힘을 다해서 시간을 쏟고 있다. 그런 어리석은 시간이 포기를 만들고 그렇게 나는 계속 포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정면 돌파의 힘이 필요하다.
샤모니 몽블랑산은 높디높아 하늘과 가깝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눈이 가득했다. 눈 입자들은 바람을 만나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기도 하고 다시 가라앉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떤 바람을 만나 흩날리게 되는 눈빛 가루처럼 요동치는 것. 그럼에도 언젠가는 안정을 찾아 소복하고 진득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 지금은 요동의 시간. 바람을 즐겨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