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와서 폐기 좀 가져가]
[나 지금 친구랑 같이 있어]
[친구랑 간식으로 먹어. 크림빵 같은 거 많아]
엄마의 문자를 무시할 수 없어 마지못해 편의점으로 걸어간다. 친구를 편의점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둔다. 친구는 자신도 편의점에서 살 게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마지못해 친구를 편의점에 함께 데려간다. 편의점까지 걸어가는 발이 무겁다. 그냥 다른 편의점에 갈까? 굳이 가까운 편의점을 두고 왜 멀리 돌아가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편의점에 도착한다. 들어가기 전에 친구에게 쿨한척 놀라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이 가게 안에는 우리 엄마가 있어. 예전부터 일하고 있었어. 엄마가 집에 있기 심심하대서. 그러니 놀라지 마.” 티가 날지 안 날지 모르는 거짓말을 하고, 편의점을 살펴보았다. 통유리창으로 편의점 로고가 있는 색깔 조끼를 입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엄마는 제법 힘이 세다. 평소에 운동도 안 하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삼각김밥과 샌드위치가 든 무거운 바구니나 음료 꾸러미 따위를 번쩍번쩍 든다. 사다리로 높은 곳에 올라서 라면 박스를 옮기기도 한다. 열 몇 시간씩 서 있는 건 편의점에선 기본이다.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 친구를 보고는 반가워하더니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우리의 품에 금세 편의점 음식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살갑게 인사를 나눈 친구는 ‘감사합니다.’ 하고 음식들을 받아 든다. 그중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섞여 있다. 나는 이만하면 됐다며 엄마와 실랑이한다. 고작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폐기물로 서로 감사 인사를 주고받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가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까? 난 왜 엄마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까. 친구는 사실 별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갑자기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이 동네와 친구들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10년 전쯤 우리 가족은 이 동네로 이사 왔다. 내가 전에 살던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신축으로 지어진 아파트와 그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있는 학교들, 학업 분위기도 치열했다. ‘너희 부모님 뭐 하시니?’ 하고 물으면 부모님 자랑을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물론 엄마가 전업주부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엄마들은 학교에 치맛바람을 일으키곤 했다. 학교 앞에는 학원 셔틀이 줄지어 서 있거나, 외제차들이 빨간 깜빡이를 켜두고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은 누군가가 부러워할 만큼 금전적으로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외제차도 없었고 학원을 맘껏 다니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빠의 일정한 벌이와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걱정 없이 살아왔다.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였지만 학교에 관심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엄마의 관심 속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돌아오면 늘 아늑하고 깨끗한 집이 나를 반겼다.
그런데 지금은 쌓여있는 빨래 더미와 냉장고에 가득한 편의점 음식이 나를 반겨준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본다. 한숨이 푹 나온다. 엄마에게 카톡 하나가 날아왔다.
[엄마 일하는데~ 너 전 남친 만났어 OO이. 뭐 사러 왔네. 아주 당황하던데? ㅋㅋ]
으! 진짜로 정말 정말 싫다. 엄마가 일을 그만하면 좋겠다. 창피한 기억은 잘 버려지지도 않는다.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내 손에 꾸역꾸역 쥐어지는 편의점 음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