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연애를 많이 했다. 배우자를 고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릴 적부터 했던 말이 있다. "너는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 많은 사람 만나보고 늦게 하자." 그래서일까 즐겁게 다양한 사람들과 연애를 했고 학교 다닐 때 만난 CC는 그냥 첫사랑으로 끝났고, 그 후 오랜 시간 연애를 했던 사람과는 365일 중에 300일 정도는 다툼으로, 그렇게 4년 후 이별을 했다. 다투면서도 4년을 이어온 그 사람과의 이별은 조금 힘들었던 것도 같다. 이별 후 마음을 다른 곳으로 집중하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그 모임에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던 오빠가 회사 동생을 신입회원으로 초대해서 왔는데, 수줍고 말 없는 사람이었다. 말없이 수줍은 모습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나의 이상한 모성애를 자극했던 것 같다. 봉사모임을 몇 번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마침 나이도 같았다. 그 친구가 바로 지금 나의 남편이다. 우린 2002년 월드컵 시즌에 만나 연애를 했다. 붉은 악마의 열정만큼이나 지나치게 뜨겁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2003년 3월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연애를 하던 일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서로 다른 점에 끌려 부부가 되었는데, 그 서로 다른 점 때문에 참 많이 다투기도 한다.
연애와 결혼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연애할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는 못하겠는데..'로 바뀌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우린 서로를 사랑하니 많은 부분 서로 알아가며 인정해 가며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부부가 되었다.
결혼 전 처음으로 남편의 부모님께 인사를 가던 날을 기억한다. 간암 투병 중이셨던 아버님과 엄청 날카로워 보이던 어머님, 그리고 조금은 낯선 모습의 시동생까지..
식당으로 걸어가며 아버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 니 이따가 놀라지 말레이" 아버님은 안동분이시다. 살짝의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그땐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일까 알지 못했다. 잠시 후 식당에 들어서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이 가족 모두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뜨거운 물 한 컵에 담아 소독을 하신다. 상추를 한 장 한 장 앞뒤로 검사를 한 뒤 가족들이 먹을 수 있게 한다. 본인은 맛있게 음식을 드시지도 않는다.
이건 먹어라. 이건 먹지 마라. 모두에게 한마디한마디 잔소리를 하신다. 내가 살아온 우리 집 환경과 너무나도 크게 달랐다. 사실 남편이 연애할 때 깔끔한 스타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건 지저분한 사람보다는 좋은 거니까,라고 스스로 위안했었다. 그때부터 어머님과 나는 가까워질 수 없음을 감지했다. 불편했다. 밥자리도 불편했고, 상황도 불편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라서 그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땐, 남편하고 살 거니까, 어머님의 그런 점이 크게 문제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는 아주 큰 숙제로,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되었다. 남편은 컵라면을 성인이 되어서야 먹어봤다고 했다. 튀긴 음식을 사 먹으면 혼나야 했다. 치킨, 순대, 이런 건 어머님은 드시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눈으로 보고 사셔야 그게 좋은 거다. 그러니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먹는 음식은 모든 걸 의심하신다.
여행도 비밀로 다녀야 했다. 회사에서 늦어도 늦었던걸 알게 하면 안 된다. 반찬을 자꾸 만들어다 주시고 먹기 싫은 것도 건강을 우리히 먹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렇게 22년을 살고 있다.
큰아이가 22살이 된 지금도 귀가가 늦는 날엔, 그걸 알게 되신 날엔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 여태 밖이면 애들 밥은 어쩌니?" 오랜 시간 듣고 살아온 말이다. 밥! 밥! 밥!
어머님의 시간은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어머님의 아들이 50살인걸 잊으시는 것 같다.
그저 그때의 당신 아들을 기억하고 있으신 듯하다.
가끔은 '어머님이 살던 그때와 제가 사는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요!'라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 숨 막힐 듯 힘들었던 그 세월들, 그 속에서 나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런 어머님을 그냥 인정하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선 이해보다 인정이 빠른 것 같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지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에 있다 보니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힘든 시간이 있어서 늦게 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바쁘냐?"라고 첫마디를 시작하신다.
역시 이해는 가지 않는다. 그 말 뒤에는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냐?'가 숨어있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 같은 건 생각하시지 않는다. 그래 그런 분이잖아. 그렇게 인정하며 그때의 기분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나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