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

마음엔 휴지통이 없다.

by 최다온

삭제라는 건 참 간단하다. 쉬워 보인다. DELETE 키 한번 누르면 끝난다.

아무렇게나 찍어둔 사진을 선택하고 삭제버튼을 누르면 사진은 지워진다. 너무나 많이 저장되어 있는 문서도 메시지도 지우면 끝이다.


언제부턴가 일 년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데 저장되어 있는 누군가의 폰 번호도 많다. 가끔 한 번씩 선택하고 정리한다.


연락처를 지우고, 사진을 지우고, 대화기록을 지우면 그 사람과의 시간도 함께 사라질 줄 알았다.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지만 지워야 하는 사람들이 가끔 생긴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소개받고 그저 스쳐지나기도 하는 수많은 사람들, 차차 지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함께 일하다가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지워야 한다. 함께 한 시간을 지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나를,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일이 맞지 않다고 느끼고 그만두는 건데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문득 스쳐 지나는 기억, 아무렇지 않게 듣던 말투, 미소, 함께 했던 그때의 공기와 감정, 삭제버튼을 눌렀는데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다.


어쩌면 지우고 싶은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나였는지도 모른다.

상처받고도 애써 웃던 나, 괜찮은 척 버틴 나

그것을 지우고 싶었을지도. 그래서 더 지워지지 않는 건 아닐까.


어쩌면 완전히 삭제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덜 아프게 저장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선명하던 기억도 어느새 흐릿해지고, 날카로웠던 그때의 감정이 무뎌지기도 한다.


삭제하지 못하고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삭제'인지도 모른다.


마음엔 휴지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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