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가 나를 숙성시킨다.
어릴 때 꽤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 마음대로 안되면 떼쓰고 울고, 내 감정이 먼저였고, 내 선택이 늘 옳다고 믿었고, 고집을 피웠다. 엄마 아빠를 힘들게 했고, 동생들도 언니는 참 어릴 때 이기적이었다고 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서툴렀고 받으려고만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고등학생이 돼서도 친구랑 같이 사기로 한 아디다스 가방을 살 돈을 엄마가 줄 때까지 학교를 안 간다고 떼를 부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했던 아이였다.
결혼하고 첫째 아이를 임신했던 어느 날, 동생이 이사를 하던 날, 가족들이 이사를 돕는다고 모였는데, 때가 되었는데 점심을 안 먹는다고 짜증을 부리고 임산부가 어마어마한 유세인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도 가끔 동생들이 놀린다. 언니 배고프게 하면 안 되니까 빨리 먹이자고 하면서 그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내 가족들 눈에 내가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이니까 봐준 거지.
그런 내가 무려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처음엔 그저 '키운다'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학교를 보내는 일이 아니었다.
내 시간을 내어주고, 내 감정을 접어두고, 때로는 내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담담해야 했으며, 강인해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화를 참고, 이해하려 애쓰는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갔다. 가끔 지치고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들의 성장 속도는 언제나 지금이었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나 자신을 바꿔야 했다. 내 위주로 살던 내게 참 잔혹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쉽게 짜증 냈을 일에 한번 더 숨 고르기를 해야 했고,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던 일들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이해이 폭이 넓어졌고, 마음의 결도 부드러워졌다. 그게 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변화해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은 나를 키운 스승이었다. 말없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조용히 나를 깊어지게 했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준 것이다.
숙성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간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예전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각각 다른 아이들의 성향에 맞춰 반응할 수 있는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나가는 한 사람으로 숙성되어 갔다. 나를 깎고 다듬어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제 안다. 삶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익어가는 것'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를 숙성시키는 중이다. 나의 네 아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