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전 선생님
수능시험을 마치고 아빠는 나를 데리고 바로 운전면허학원에 가서 등록해 주셨다. 면허 취득하고 바로 운전해서 대학도 다니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다니라고, 멋진 아빠다. 사실 아빠의 운전사로 쓰고 싶으신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빠는 우리를 봉고차에 태워서 봄이면 진해 군항제로 여름이면 바다로 가을이면 용인자연농원으로(지금의 에버랜드) 서울 63 빌딩으로 많이 다녀주셨다.
내가 스무 살 성인이 되면 바로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자동차학원에 등록해서 열심히 배웠다. 필기시험은 공부를 하던 어린 나이니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그때는 S코스 T코스가 있던 때, 후진을 할 때 자꾸 선을 밟고 떨어졌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세 번까지 떨어지자 아빠는 이제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 동행해 주지 않았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웃음이 난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에 면허취득을 못했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내가 면허취득에 도전한 건 스물다섯 살 때 이다. 그때는 학과와 실기 다 한 번에 합격했는데, 도로주행시험에서 또 한 번 쓴맛을 보고 두 번째 도로주행 후에 합격했다.
그렇게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아빠가 너무 좋아하셨다. 문제는 도로주행! 나의 도로주행선생님은 바로 아빠였다. 어렵게 배워야 운전을 잘할 거라고 하시면서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땐 지금처럼 오토가 아니고 스틱으로 배웠다. 1종 보통면허를 취득했고 스틱으로 했다. 기어변경을 제대로 해야만 운전을 잘할 수 있었다.
아빠는 오르막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가 다시 출발하게 하고, 어려운 코스를 데리고 다니면서 주행연습을 시켜주셨다.
한 번은 아빠 계모임에 나를 기사로 시켜서 대전에서부터 충남 보령까지 운전을 하고 다녀온 적이 있다. 갈 때는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옆에서 안내하면서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그렇게 갔다.
그런데 돌아올 땐 아빠가 친구들과 술을 드시고 주무셨다. 온전히 나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면서 도로 위를 달려야 했다. 무사히 집까지 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온몸을 집중시켰다.
도착해서 아빠를 깨우니 엄청 칭찬해 주셨다. 그 후부터는 혼자서 어딜 나가도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한 번은 내가 아빠 몰래 차를 끌고 시내를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집 앞에 다시 주차를 못해서 아빠를 깨운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진주차도 아빠한테 잘 배우고, 아빠는 감각이 좋다고 아빠 닮았다며 좋아하셨다.
엄마의 운전연습은 부부싸움밖에 되지 않았는데, 딸은 너무 잘 배운다면서 자랑했다.
그 후로 아빠는 가족모임이 있는 자리 나, 술자리가 있으실 땐 나를 대리로 부르셨다. 난 그저 뿌듯하고 좋았다.
아빠의 보라색 엑센트가 나의 첫 차다. 아빠가 주신 첫차! 운전을 시작하면서 정말 가고 싶은 곳에 드라이브를 하고, 음악을 크게 틀고 아침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운전을 해서 갔고, 행복했다. 드라이브하면서 햄버거를 먹는, 멋진 모습도 부러워했는데. 얼마 후 그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고속도로를 달려 어디든 갈 수 있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엄마이고 이제는 아빠의 대리운전기사가 아닌 남편의대리 운전사가 되었다.
그렇게 운전을 시작한 지 벌써 25년이나 지났다. 내가 멋진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나의 초보시절을 함께 해준 든든한 아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