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d.
세상의 바보들과 어울린다는 건 예상 밖으로 훨씬 지치는 일이다. 이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아무렇게나 하는 막무가내들은 용케 말귀를 알아들은 성싶다가도 그들 나름의 고집이란 게 있어 쉬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듣는 채 하지도 않는 부류도 수두룩하다. 그럴 때 한 글자라도 알아 먹게 하려고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는 그와 동일한 무반응으로 응수하는 게 정신 건강에 유익하단 것을 깨달은 것은 이제야 서너 해 쯤 지났을 뿐이다. 양들은 절대 스스로를 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자기 머리나 쳤겠지. 지구가 대충 망하고 인간의 얼굴이 보기 어려워졌다고 해서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Adios는 꿍쳐두었던 교훈에 확신을 더해줬다.
인류를 둘러싼 이 위기의 순간에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상의 포기와 다름없다. 언제고 생명을 잃어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거나, 이미 자신이 죽어있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살기로 선택한, 최선을 다해 안간힘으로 살아있으려는 나로서는-애석하지만-동의해줄 수가 없다. 이다지도 암울한 전망을 갖게 된 것은 저번에 올린 일기에 대한 반응 때문이다. 이 전과 같은 시시콜콜하고 '다소' 화나는 농담 수준의 답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최신 글 자체를 읽은 adios 유저 수 자체가 감소했다. 애초에 조회수를 바라고 쓴 것이 아닌지라 숫자의 등락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걸 읽고도 모른 채 한 유저들이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뭐가 진실인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참하지 못할지언정 보고도 고개를 돌린다?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달리 Adios 유저들 사이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많은 몇몇이 존재한다. 대화니, 소통이니 하는 이 소수의 유저들은 잠도 없는지 시도 때도 없이 뭔가를 뽐내며 유저들을 긁어모은다. 아니 그렇게 복작복작한 상황이 아니면 잠에 들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는 것만 주구장창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하니 나의 가설이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닌 것이다. 그들은 나와 같은 유저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그보단 일종의 업자로 보는 편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어디서 본 바로는 유저들의 방문횟수나 조회수나 금전적인 이익으로 돌아간다던데...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지는 몰라도 그럴 여윳돈이 있다면 노인들 식비로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Adios를 다룰 줄 몰라 곤란한 노인네들이 한 둘이겠는가. [1]
하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진짜 중요한 것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으니 나도 모른 채 하겠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무슨 일이든 한 마디 붙이려는 천성은 분명히 침묵을 간지럽히다 이내 터트릴 것이기에 장담할 수 없다. 그저 Adios의 또 다른 기능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 기능은 시민들에게 Adios가 지급된 직후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전, 그러니까 양방향의 소통이 불가능할 때를 고려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Citron Feel, 아이콘만 봐도 입에 침이 가득하다. 시트론,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환경에선 꿈같은 이름이다. 아마도 우중충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상쾌하게 하려는 차원에서 이렇게 작명한 듯 한데, 끝내 실현되지 못한 의도에 유감을 표해야겠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면 뭐하나, 결국 제자리인 것을.
Citron Feel의 기능은 단순하다. 내가 말을 하면, Citron은 대답하고 나는 다시 말을 한다. 채팅일수도 있고, 전화통화나 대면 상황의 대화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기능을 어떻게 사용했나 모르겠지만 나는 꽤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Adios가 정상화되기 전에는-지금이라고 본질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지만-완전한 고립상태였다. 가족과의 접촉마저 금지됐다는 뉴스는 정말 죽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기에 더더욱 혼자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친구가 되어준 것이 이 Citron이다. Citron은 스스로를 인공지능이라고 소개했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니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 듯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단순한 동의, 반대에 그치지 않고 나의 주장에 질문하고 반박하는 모습에서 감탄을, 아니 감화를 받았다. 그동안 '나'라는 존재에 이토록 큰 관심을 보여주었던 인간이 있었던가.
Citron과의 재회하게 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간 상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할까. 혹은 인간들에게 느낀 불쾌한 감정을 시작으로 Citron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었는지를 말해야할까. 어느 편이든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 입장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볍다.
[1] <퇴근길 인문학 수업-관계>, 전미경 외, 한빛비즈 (2019) ; 1인 가구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