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손끝으로 다시 시작한 강의
‘실버강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렸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름이 내게 건넨 무게는 단순한 직업 명칭 그 이상이었다.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일, 누군가의 하루에 내가 작은 의미가 되는 일이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도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피부관리사로 30년을 일했다.
수많은 얼굴을 만졌고, 그 얼굴 안에 담긴 감정과 삶을 들여다보았다.
때로는 말보다 피부가 먼저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정해진 비용을 지불했다고 해서 마치 나를 하녀처럼 부리는 사람들,
내가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피부과 시술 이야기를 들이밀며 비교하고 훈계하듯 말하던 고객들.
나는 점점 사람에게 지쳐갔다.
“이제 정말 그만해야지…”
몇 번이나 혼잣말처럼 되뇌었지만,
내 손끝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시술이 끝난 뒤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던 고객들의 미소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전공이 체육학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백세운동강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떠올랐다.
하루 종일 TV 리모컨만 들고 계신, 움직임을 잃어가는 우리 엄마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무작정 도전했고, 백세운동강사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막상 강의를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유튜브를 뒤지고, 책을 사서 보고, 실버체조라 불리는 영상들을 따라 해보았지만
내 마음을 흔드는 수업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인지 훈련, 손유희, 놀이기구를 활용한 수업.
좋은 프로그램들이지만 나와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뭘까?”
“어르신들이 정말 좋아하시는 건 뭘까?”
그리고 그 질문 끝에 도착한 답은 내 손이었다.
나는 다시, 30년 동안 가장 익숙했던 나의 손끝을 떠올렸다.
그 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돌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 강의는 이렇게 흘러간다.
� 자세교정 체조로 굽은 등을 천천히 펴드린다.
� 손맛사지로 굳은 마음을 조금씩 녹여드린다.
� 내가 직접 블렌딩한 아로마 오일을 손끝에 묻혀
귀와 목 뒤를 부드럽게 마사지해드린다.
“선생님, 오늘도 너무 좋았어요.”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어르신들의 그 말 한 마디가 내 안의 모든 망설임과 불안을 다 녹여버린다.
어르신들은 격렬한 운동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는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신다.
앉아서 함께 웃고, 노래하고, 향기를 맡고, 마지막엔 조용히 손을 꼭 잡아드리는 시간.
나는 오늘도 여전히 고민한다.
“어떤 강의를 더 만들 수 있을까?”
“내 수업이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멈추지 않는 실버강사로, 나는 또 어르신들 앞에 선다.
이제는 분명히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강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온기를 전하는 마음의 수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