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그늘은 빛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세상에 돋아난 모든 씨앗이 따스한 햇살 아래 자랄 수는 없듯, 제 어린 시절은 서러운 그늘 속에 있었습니다. 2남 1녀 중 둘째 딸. 겉으로는 부족함 없어 보이는 집이었지만, 경상도의 굳건한 가부장 문화 속에서 제 자리는 늘 오빠의 다음이었습니다.
총명하다는 칭찬도, 뛰어난 성적도 “계집애가 지 오빠보다 잘나면 뭐 하냐”는 한마디에 빛을 잃었습니다. 과학고를 추천해 주시겠다던 선생님의 기대는, 연합고사마저 낙방한 오빠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 아래 꺾이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재능의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꺾이던 시절, 그 억울함은 어린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졌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지탱해야 하는 무게는 고스란히 제게로 향했습니다. 술에 기댄 오빠와 세상 밖으로만 돌던 남동생. 홀로 삼 남매를 키우시는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던 것은, 결국 둘째 딸인 제 몫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제 삶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딸들을 돌봐주시는 어머니를 모시며 집안의 대소사를 꾸리는 것은 당연히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래성처럼 삶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빠의 사업 실패와 믿었던 선배의 배신으로 강남의 피부샵까지 잃었습니다. 평생을 일궈온 재산은 하룻밤 새 잿더미 같은 빚이 되었고, 온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차가운 등을 보이며 떠나갔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 저를 외면했습니다.
깊고 어두운 절망의 동굴 속에서, 우울증이라는 그림자가 저를 잠식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의 얼굴을 보며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단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던 그때,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약속드렸습니다.
“저를 이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게 해 주신다면, 남은 삶은 저처럼 아파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피부샵을 열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소년재단에 재능을 기부하고, 창업을 꿈꾸는 한부모 가장들에게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나누며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빛을 향해 걷다 보니, 하나님은 저를 또 다른 길, 더 깊은 위로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바로 ‘실버 강사’라는 소명이었습니다.
차가운 세상의 시선에 움츠러들었던 제 손은 이제,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이 되었습니다. 아로마 향기 속에서 따뜻한 터치로 그분들의 외로운 마음을 만져드리는 순간, 제 가슴속 응어리가 뜨거운 눈물과 함께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단순히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가 아닙니다. 한평생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눈빛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로, 무너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손길로 **‘어르신을 위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자 매일 노력합니다.
돌아보면, ‘딸’이라는 이유로 서러웠던 어린 날도, 모든 것을 잃고 울부짖던 청춘의 어느 날도, 모두 이 길을 걷기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었습니다. 그 깊은 상처가 있었기에, 다른 이의 아픔을 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2막을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위로의 통로’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오늘도 저는 기도합니다.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 속에, 제가 자그마한 빛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