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로터리에서 피어난 어린 나
1972년 6월, 나는 한남동 로터리에 자리 잡은 새서울 약국집의 둘째이자 유일한 딸로 세상에 태어났다. 4.25kg의 우량아였던 나는, 보통의 아기들과 달리 어머니 뱃속이 편했는지 열 달이 지나고도 무려 11달 반이나 머물다 유도분만을 통해 어렵게 세상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며 큰 하혈을 겪으셨고, 어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죄송하고 마음이 아렸다. 나 역시 딸을 낳아본 후에야 비로소 어머니가 겪으신 고통과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 두 번의 신비로운 태몽을 꾸셨다고 했다. 커다란 난 화분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꿈과 무서운 호랑이에게 밤새 쫓기던 꿈이었다. 어머니는 그 꿈들로 인해 나에게 큰 기대를 품으셨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 수 없는 책임감과 기대를 마음속 깊이 느끼며 자랐다.
한남동 새서울 약국집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삼남매가 함께 살았고, 근처에 계신 큰고모와 둘째 고모 가족들이 특별한 날이면 언제나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늘 손님상 차리느라 정신없이 바쁘셨고,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프곤 했다.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하신 약사셨기에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특히 장남인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압박 속에 공부를 해야 했지만, 오빠 대신 다섯 살인 내가 먼저 한글을 깨치면서 뜻밖에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간판에 적힌 글자를 읽게 하셨고, 나는 어린 나이에도 "한남동 새서울 약국집 딸은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매일 아침 "하나, 둘, 셋…백 다 했어요!" 하며 뽀뽀 백 번을 드리는 것이 일과였고, 그 당시엔 다소 귀찮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유년의 어느 날, 부모님이 크게 다투신 후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어린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졸지에 부산에 있는 고모 집으로 보내졌다. 6살의 나는 그렇게 할머니와 고모, 사촌들과 부산에서 약 2년을 지냈다. 고모 집에서의 생활은 마냥 외로웠다. 엄마라는 단어는 금지된 말이 되었고, "엄마는 이제 없다"는 할머니의 냉정한 말에 나는 질문조차 하지 못한 채 홀로 가슴앓이를 했다.
부산의 기억은 외롭고 차가웠다. 사촌 언니들은 나를 놀리며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자주 말했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어린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웠고, 밤마다 이불 속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며 "나는 진짜로 버려진 걸까?" 하고 생각했다. 오빠와 남동생은 한남동에서 지내는데 나만 버려진 아이처럼 부산에 와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부모님과의 연락이 끊어진 채 2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매일같이 언제쯤 서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친구들과 놀면서도 "난 곧 서울로 돌아갈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이제 서울로 가자, 학교에 입학해야 하니까."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심장이 터질 듯 기뻤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다시는 엄마 아빠와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서울로 돌아오니 신기하게도 엄마가 다시 집에 계셨다. 그동안 엄마는 시집살이와 고모들의 등살에 힘들어 친정으로 떠나 계셨다고 했다. 그때는 어린 나이였기에 엄마를 원망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2년을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탓에 지금까지도 엄마와 손을 잡거나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일이 어색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매일 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가슴에 넣고 다닙니다. 그 행복했던 시간과 아픈 기억들이 모두 합쳐져 나의 어린 시절을 만들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들, 부산에서의 외로움과 서울로 돌아왔을 때 느낀 벅찬 기쁨이 지금의 나를 더욱 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믿는다. 가슴 깊이 품은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멀어진 듯 가까워지고 싶은 어머니와의 시간이 나의 삶 속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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