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일러를 켜던 날, 나의 인생도 켜졌다

엄마의 잔소리가 내 인생을 바꾼 날

by 다온홍쌤

큰아이만 키울 때보다 둘을 키운다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겁이 났었다.
그런데 우리 둘째 딸은 달랐다. 새벽에 깨서 보채는 일도 없었고, 언니가 귀찮게 할 때만 칭얼거릴 뿐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천사 같은 아기였다. 그 웃음이 있었기에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보일러가 꺼진 아침
금촌의 군인아파트. 남편은 혹한기 훈련을 가고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월급도 떨어졌다. 이불을 몇 개씩 덮고 두 딸과 함께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때,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기름을 채워주시면서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미용실은 도대체 언제 갔어? 옷은 그것밖에 없어?"
군인 대위 월급이 뻔한데, 아이 둘을 키우려니 나에게 쓸 돈은 없었다. 머리는 나중에, 옷은 입을 만한 게 있으면 됐다.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엄마의 결심
그날 엄마는 큰 결심을 하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안 되겠다. 내가 애들 봐줄 테니 나가서 일해라."
엄마는 나 때문에 의정부로 이사를 하셨다. 금촌에서 남편의 다음 근무지가 양주 가래비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살고 계시던 집을 전세 놓고, 전세를 얻어서 의정부로 오셨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도움으로 일을 찾기 시작했다.


2001년, 나의 첫 시작
처음엔 아기옷 가게를 해볼까도 했고, 아이스크림 체인점도 알아봤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다녔다.
그러다 결국 대학 때 잠깐 배웠던 마사지를 하기로 했다.
그때가 2001년이었다.
백일 된 둘째를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보일러가 꺼진 그 추운 아침 이후,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그 일이 평생 직업이 될 줄은.


작가노트:
때로는 가장 추운 순간이 인생의 가장 따뜻한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보일러가 꺼진 그 아침,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함께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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