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게 돌려준 '나'

그렇게 문을 열었다

by 다온홍쌤

허름한 군인아파트에서

2001년 양주 가래비, 허름한 군인아파트.

백일 지난 둘째를 안고, 첫째 손을 잡고,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니, 버틴다는 표현도 거창하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었다.

미용실 한 번 가는 게 사치였던 그 시절,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갔을까?'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했던 시간들이 가물가물했다.

엄마의 마음

우리 엄마는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다.

"나는 절대 손주 안 봐. 내 인생 살 거야."

차를 몰고 다니시며 친구분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취미 생활도 즐기시던 분. 당신의 노후를 당당하게 누리고 계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빨리 예전의 딸로 돌아와. 네가... 너 같지 않아."

그리고 그렇게 싫어하시던 육아를, 스스로 선택하셨다. 내 딸들을 돌봐주시기 시작하셨다.

"나가서 뭐라도 해. 네가 너답게 살 수 있는 걸 찾아."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엄마는 내게 '손주 육아'를 도와주신 게 아니었다. 나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신 거였다.

그렇게 문을 열었다

엄마의 채근은 다정했지만 단호했다.

"언제까지 그렇게만 있을 거야?"

그래서 나는 피부미용학원 문을 열었다.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분. 내 인생의 스승님.

"보조강사 해볼래요?"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 한 마디 "네"가, 앞으로 20년 넘게 이어질 내 인생의 시작점이 될 줄은.

싫었던 시간들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아빠의 유언에 따라 절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학원 원장님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셨다.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시는 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싫었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하나님이 조용히 내 곁에 오셨던 건. 싫다고, 불편하다고 외면했던 그 아침의 시간들이 어쩌면 나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건 아닐까.

고생도 선물이었다

보조강사에서 시작해서, 피부관리실 실장이 되었다.

그러다 만났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피부샵만 덜컥 차려놓은 원장님을. 그때 정말 고생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혼자 이것저것 배우고, 실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고생이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배웠고, 고객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고, 진짜 전문가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피부샵 문을 열었다.

20년이라는 시간

'잠깐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좀 크면 다른 걸 해야지. 이건 그냥 지금 필요해서 하는 거야.

그런데 20년이 흘렀다.

그 '잠깐'이 어느새 나의 전문성이 되어 있었고,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암환자분들을 돌보는 천직이 되어 있었고, 백일 지난 둘째를 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섰던 그 작은 발걸음이, 지금은 시니어 어르신들께 걷기와 명상을 알려드리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2001년 양주 가래비, 그 허름한 군인아파트. 엄마가 내게 돌려주신 '나'. 뭔지도 모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한 "네"라는 대답. 싫었지만 견뎌낸 아침의 시간들. 고생스러웠지만 온몸으로 배운 경험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당신의 시작도 괜찮아요

혹시 지금, 당신도 망설이고 있나요?

'잠깐만'이라는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하려는 건가요?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네" 하고 대답해야 할 순간 앞에 서 있나요?

괜찮아요.

시작은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뭔지도 모르고 "네" 해도 돼요. 싫은 시간도, 고생스러운 순간도, 다 견뎌내면 돼요.

그 불완전한 시작이, 그 떨리는 발걸음이, 그 눈물 나는 고생이,

언젠가는 당신만의 단단한 전문성이 되어 있을 테니까.

나처럼.

그때 엄마가 내게 돌려주신 '나'처럼, 당신도 당신만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 여정을 응원합니다.


- 다온콩쌤
마사지 테라피스트로 살아온 지 23년, 지금은 암환자 케어와 시니어 강사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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